반응형
기자맨의 최근 생활뉴우스
임창정
임창정
任昌丁 | IM CHANG JUNG |
|
출생
|
1973년 11월 30일 (49세)
|
경기도 이천군 백사면 송말리
(現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송말리) |
|
본관
|
풍천 임씨
|
국적
|
대한민국
|
거주지
|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
신체
|
168.2cm | 62kg | B형
|
가족
|
아버지 임경빈, 어머니 한향난
누나 2명, 여동생 1명 |
배우자 서하얀(2017년 1월 6일 결혼 ~ 현재)
장남 임준우(2006년 8월 18일생) 차남 임준성(2008년 2월 1일생) 삼남 임준호(2010년 12월 19일생) 사남 임준재(2017년 5월 10일생) 오남 임준표(2019년 11월 9일생) |
|
학력
|
이천남초등학교 (졸업)
이천중학교 (졸업) 이천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영화학 / 중퇴) |
병역
|
사회복무요원 소집해제
|
종교
|
무종교
|
팬덤
|
빠빠라기
|
직업
|
가수,
|
데뷔
|
배우: 1990년 영화 《남부군》
|
가수: 1995년 정규 1집 《이미 나에게로》
|
|
특기
|
노래, 연기, 자작곡, 운동, 남도창, 모창, 거짓말
|
별명
|
만능 엔터테이너, 나창정, 나두창정 창정이형, 갓창정, 창정신, 킹창정, 임착한, 임번복, 임꺽정, 임아빠, 대표님, 런창띵(Rén Chāngdīng), 쉰파파, 임구라, 임고집
|
| | | | 부계정 |
|
1. 소개
대한민국의 멀티 엔터테이너.
2. 특징
3. 가창력
4. 연관된 작곡가들
은퇴 전까지 정규 앨범만 10장을 발매하면서 수많은 작곡가들과 작업을 했습니다.
이 문서에서는 그 중에서도 임창정과 많은 작업을 하거나 임창정의 노래를 언급하는데에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작곡가와의 음악적인 면에서 임창정과의 관계를 서술합니다.
먼저 작곡가들을 언급하기 전에 음악적인 면에서 임창정의 음악적 특징과 스타일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는데,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인 색깔은 대중적인 색깔과 조금 거리감이 있습니다.
임창정이 작곡한 대부분의 곡들은 음악 자체적으로 기승전결이 다른 대중적인 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으며, 한 소절 이후 다음 소절에 어떤식으로 노래가 진행이 되는지 예측하기 꽤 어렵습니다.
임창정 특유의 스타일은 그의 창법에서도 드러나는데, 본인이 가장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창법은 서정적 발라드보다 트로트에 가깝다.
이러한 창법들로 인해 1990년대 이후 대중이 선호하는 서정적 발라드에 꼭 맞는 창법을 지닌 가수는 아니라는 점.
물론 임창정 정규 앨범 수록곡중 모든 곡들이 임창정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임창정 본인의 임창정스러움과 대중적 필요를 둘 다 충족시키기는 작곡가 입장에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첫 번째 은퇴 이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곡에서 1) 고음이 여실히 드러나야 하며 2) 특유의 꺾는 창법이 요소요소 잘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는 90년대 이후 대중적 발라드가 (고음 제외) 추구하는 바와는 상반됩니다.
이 문서에서는 그 중에서도 임창정과 많은 작업을 하거나 임창정의 노래를 언급하는데에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작곡가와의 음악적인 면에서 임창정과의 관계를 서술합니다.
먼저 작곡가들을 언급하기 전에 음악적인 면에서 임창정의 음악적 특징과 스타일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는데,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인 색깔은 대중적인 색깔과 조금 거리감이 있습니다.
임창정이 작곡한 대부분의 곡들은 음악 자체적으로 기승전결이 다른 대중적인 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으며, 한 소절 이후 다음 소절에 어떤식으로 노래가 진행이 되는지 예측하기 꽤 어렵습니다.
임창정 특유의 스타일은 그의 창법에서도 드러나는데, 본인이 가장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창법은 서정적 발라드보다 트로트에 가깝다.
이러한 창법들로 인해 1990년대 이후 대중이 선호하는 서정적 발라드에 꼭 맞는 창법을 지닌 가수는 아니라는 점.
물론 임창정 정규 앨범 수록곡중 모든 곡들이 임창정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임창정 본인의 임창정스러움과 대중적 필요를 둘 다 충족시키기는 작곡가 입장에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첫 번째 은퇴 이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곡에서 1) 고음이 여실히 드러나야 하며 2) 특유의 꺾는 창법이 요소요소 잘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는 90년대 이후 대중적 발라드가 (고음 제외) 추구하는 바와는 상반됩니다.
5. 김형석
임창정하면 당연 작곡가 김형석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임창정의 음악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곡가입니다.
임창정을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발라드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이자, 3집부터 5집까지 임창정 앨범을 총괄 프로듀싱했으며, 이후 조규만이 앨범 프로듀싱을 맡은 이후에도 8집의 '기다리는 이유'와 9집의 '슬픈 혼잣말'이라는 명곡 타이틀들을 2번이나 내놓은 작곡가다.
임창정을 대하는 김형석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각 시대 대중이 원하는 발라드의 이미지를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이며 임창정이란 가수를 활용함으로서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할지를 아는 작곡가였다는 것.
임창정 스타일의 발라드를 완성시켰다고 말해도 될 만큼 임창정 전문 작곡가의 자질을 원없이 보여줬습니다.
가끔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 색깔을 극대화시킨 작곡가는 아니라고 단점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위에 언급 되었듯이 김형석이 작곡한 발라드가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르기 때문이고 또한 이러한 평가들은 주관적인 견해가 섞이기 마련입니다.
다만 결론적으로 김형석이 다른 임창정 곡들을 써낸 작곡가들보다 더욱 빛나는 영역은 바로 임창정의 목소리를 통해 임창정만의 전통 발라드를 완성시켰고 특유의 슬픈 감성이 잘 묻어나오는 명곡들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담으로 세바퀴에서 밝혀지길, 김형석과 임창정의 첫 만남은 노래방에서였습니다.
옆방에서 너무 노래를 잘해서 김형석이 양주 1병을 들고 찾아갔는데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임창정이어서 '이 사람이 이렇게 노래를 잘했나?' 하고 놀랐으며, "꼭 작업을 같이 하자"고 연락처를 교환했다고 합니다.
다만 김형석은 임창정이 당시 자신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당시 임창정도 작곡가 김형석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고 합니다.
.
임창정을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발라드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이자, 3집부터 5집까지 임창정 앨범을 총괄 프로듀싱했으며, 이후 조규만이 앨범 프로듀싱을 맡은 이후에도 8집의 '기다리는 이유'와 9집의 '슬픈 혼잣말'이라는 명곡 타이틀들을 2번이나 내놓은 작곡가다.
임창정을 대하는 김형석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각 시대 대중이 원하는 발라드의 이미지를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이며 임창정이란 가수를 활용함으로서 대중에게 어떻게 어필할지를 아는 작곡가였다는 것.
임창정 스타일의 발라드를 완성시켰다고 말해도 될 만큼 임창정 전문 작곡가의 자질을 원없이 보여줬습니다.
가끔 임창정 본인의 음악적 색깔을 극대화시킨 작곡가는 아니라고 단점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위에 언급 되었듯이 김형석이 작곡한 발라드가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르기 때문이고 또한 이러한 평가들은 주관적인 견해가 섞이기 마련입니다.
다만 결론적으로 김형석이 다른 임창정 곡들을 써낸 작곡가들보다 더욱 빛나는 영역은 바로 임창정의 목소리를 통해 임창정만의 전통 발라드를 완성시켰고 특유의 슬픈 감성이 잘 묻어나오는 명곡들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담으로 세바퀴에서 밝혀지길, 김형석과 임창정의 첫 만남은 노래방에서였습니다.
옆방에서 너무 노래를 잘해서 김형석이 양주 1병을 들고 찾아갔는데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임창정이어서 '이 사람이 이렇게 노래를 잘했나?' 하고 놀랐으며, "꼭 작업을 같이 하자"고 연락처를 교환했다고 합니다.
다만 김형석은 임창정이 당시 자신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당시 임창정도 작곡가 김형석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고 합니다.
.
6. 조규만
김형석이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작곡가라면, 조규만은 본인의 색깔이 뚜렷하면서 (가장 정형화된 발라드 스타일) 그 색깔 자체가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이라 작곡가중에서도 못해도 중박 이상은 치는 작곡가다.
특유의 멜로디와 편곡으로 합쳐진 악기들과 코러스의 조화가 자칫하면 밋밋하게 들릴 수도 있는 멜로디를 꽉 붙잡고 클라이막스까지 끌고 올라간다.
특히 후렴 전 부분에서 조규만 작곡가 만의 색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편입니다.
5집까지 김형석의 시대가 끝나면서 6집부터 임창정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기 시작했는데, 6집부터 그가 임창정에게 선물한 곡들은 임창정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주옥같은 곡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3집 'Summer Dream', 6집의 'Smile Again', '이별이 나를 부를때' 7집의 '그대도 여기에', 8집의 '너에게 모자란 나' 같은 곡들.
하지만 조규만 스스로의 스타일이 너무나도 확고하면서도 그 확고한 스타일이 임창정과는 극인지라, 노래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표현하기에는 가장 적합하지 않았던 작곡가.
조규만 작곡의 곡들을 들어보면 임창정보다는 예전 전성기의 조성모에게 더욱 더 어울리는 곡들이 많습니다.
조규만의 음악적 성향과 임창정의 그것이 극이라는 것은, 임창정이 조규만 곡을 라이브로 부를 때 특히 잘 드러납니다.
녹음과는 달리 본인 특유의 음악적 성향을 감출 수 없는 공개 무대 라이브에서 부른 조규만 작곡의 'Smile Again' 후렴부를 들어보면, 녹음곡과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임창정 특유의 꺾는 창법에 주의하면서 들어보자.
물론 임창정이라는 가수가 임창정스러움을 버려두고라도 감정적으로 대중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가수라 조규만과의 작업이 결코 나쁘지는 않았으나, 점점 임창정스러움이 김형석 시절보다 더 억압되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형석 못지않게 임창정과 많은 작업을 한 작곡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작곡한 곡들은 단 한번도 타이틀곡으로 선정되지 못했다는 점.
임창정에 대해서는 콩라인입니다.
6~7집에서는 갑툭튀한 원상우에게 밀렸다면, 8집 이후에는 다시 임창정과 작업한 김형석에게 밀려버렸습니다.
(6집과 컨셉이 겹쳤기 때문) 그 후로 타이틀곡에 미련이 없어졌는지 9집이후 조규만 곡들은 8집 보다는 퀄리티가 떨어지는 듯 했으나 10집의 '조언'으로 그 명성을 되찾게 됩니다.
다만 그가 총괄했던 음반중 6집이 임창정 팬들사이에서 주로 최고의 명반으로 뽑힌다는 점에서 임창정의 은퇴 이전 후반부의 가수 인생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사실.
사실 조규만의 곡 색깔과 임창정 본인의 색깔이 안 맞았을 뿐이지 조규만 작곡의 곡들은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조규만은 6집 이전에도 임창정과 같이 작업한 적이 있습니다.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하지는 않았지만 3집의 "너를 잊기로 했어", "Summer Dream"은 조규만의 노래.
다만 이 노래는 기이하게도 6집 이후 조규만 작곡 노래들과는 달리 임창정스러움이 많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다시 조규만 작곡가의 곡을 들어보면 팬들 사이에서 숨은 명곡으로 불리는 곡들이 많고 특히 '조언' 이라는 곡은 임창정도 그 노래를 인정해 콘서트에서 자주 부르는 곡 중 하나입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3집의 '널 잊기로 했어'라는 곡이 있는데, 조규만과 임창정의 극대화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앨범은 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 그리고 영화 비트의 삽입곡 슬픈 연가가 수록되어 있는 환장의 라인업입니다.
임창정 복귀앨범 정규11집을 프로듀싱 한 작곡가 이며, 11집의 두번째 수록곡인 '원하던 안 원하던' 을 작곡했습니다.
김형석과 조규만을 거치면서 예전 가장 임창정스러웠던 모습을 대중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작곡가는 없으리라 예상했었습니다.
특유의 멜로디와 편곡으로 합쳐진 악기들과 코러스의 조화가 자칫하면 밋밋하게 들릴 수도 있는 멜로디를 꽉 붙잡고 클라이막스까지 끌고 올라간다.
특히 후렴 전 부분에서 조규만 작곡가 만의 색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편입니다.
5집까지 김형석의 시대가 끝나면서 6집부터 임창정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기 시작했는데, 6집부터 그가 임창정에게 선물한 곡들은 임창정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주옥같은 곡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3집 'Summer Dream', 6집의 'Smile Again', '이별이 나를 부를때' 7집의 '그대도 여기에', 8집의 '너에게 모자란 나' 같은 곡들.
하지만 조규만 스스로의 스타일이 너무나도 확고하면서도 그 확고한 스타일이 임창정과는 극인지라, 노래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표현하기에는 가장 적합하지 않았던 작곡가.
조규만 작곡의 곡들을 들어보면 임창정보다는 예전 전성기의 조성모에게 더욱 더 어울리는 곡들이 많습니다.
조규만의 음악적 성향과 임창정의 그것이 극이라는 것은, 임창정이 조규만 곡을 라이브로 부를 때 특히 잘 드러납니다.
녹음과는 달리 본인 특유의 음악적 성향을 감출 수 없는 공개 무대 라이브에서 부른 조규만 작곡의 'Smile Again' 후렴부를 들어보면, 녹음곡과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임창정 특유의 꺾는 창법에 주의하면서 들어보자.
물론 임창정이라는 가수가 임창정스러움을 버려두고라도 감정적으로 대중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가수라 조규만과의 작업이 결코 나쁘지는 않았으나, 점점 임창정스러움이 김형석 시절보다 더 억압되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김형석 못지않게 임창정과 많은 작업을 한 작곡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작곡한 곡들은 단 한번도 타이틀곡으로 선정되지 못했다는 점.
임창정에 대해서는 콩라인입니다.
6~7집에서는 갑툭튀한 원상우에게 밀렸다면, 8집 이후에는 다시 임창정과 작업한 김형석에게 밀려버렸습니다.
(6집과 컨셉이 겹쳤기 때문) 그 후로 타이틀곡에 미련이 없어졌는지 9집이후 조규만 곡들은 8집 보다는 퀄리티가 떨어지는 듯 했으나 10집의 '조언'으로 그 명성을 되찾게 됩니다.
다만 그가 총괄했던 음반중 6집이 임창정 팬들사이에서 주로 최고의 명반으로 뽑힌다는 점에서 임창정의 은퇴 이전 후반부의 가수 인생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사실.
사실 조규만의 곡 색깔과 임창정 본인의 색깔이 안 맞았을 뿐이지 조규만 작곡의 곡들은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조규만은 6집 이전에도 임창정과 같이 작업한 적이 있습니다.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하지는 않았지만 3집의 "너를 잊기로 했어", "Summer Dream"은 조규만의 노래.
다만 이 노래는 기이하게도 6집 이후 조규만 작곡 노래들과는 달리 임창정스러움이 많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다시 조규만 작곡가의 곡을 들어보면 팬들 사이에서 숨은 명곡으로 불리는 곡들이 많고 특히 '조언' 이라는 곡은 임창정도 그 노래를 인정해 콘서트에서 자주 부르는 곡 중 하나입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3집의 '널 잊기로 했어'라는 곡이 있는데, 조규만과 임창정의 극대화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앨범은 그때 또 다시, 결혼해줘, 그리고 영화 비트의 삽입곡 슬픈 연가가 수록되어 있는 환장의 라인업입니다.
임창정 복귀앨범 정규11집을 프로듀싱 한 작곡가 이며, 11집의 두번째 수록곡인 '원하던 안 원하던' 을 작곡했습니다.
김형석과 조규만을 거치면서 예전 가장 임창정스러웠던 모습을 대중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작곡가는 없으리라 예상했었습니다.
7. 원상우
김형석이 앨범을 총괄하던 시대가 끝나고 조규만이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조규만의 시대가 오나 했지만 갑툭튀한 원상우가 작곡한 곡들이 6, 7집의 타이틀곡으로 선정됩니다.
원상우의 곡들은 임창정 뮤직 유니버스에서는 신세계였는데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작곡가였던 점입니다.
실제로 6집 나의 연인의 경우에는 가장 임창정스러움의 요소 (고음과 꺾는 창법)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들으면 깊이 빠져들만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물론 조규만 곡에서도 임창정 특유의 꺾는 창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규만 곡이 임창정 창법을 억압하는 방향이었다면 원상우는 임창정을 최대한 지지하면서 어떻게 대중적으로 잘 어필할 수 있는지 아는 작곡가였습니다.
원상우의 곡이 임창정의 임창정스러움을 잘 표현하면서도 6~7집 한정으로 조규만의 곡들과 비교했을 때 대중적인 면모가 부족하다고 평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절정을 찍은 게 바로 7집의 '날 닮은 너'였는데, 이는 나중에 "임창정 노래 키 어디까지 올려봤니"라고 얘기할 때 무조건 언급되는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원상우 작곡가의 노래의 특성이라 하면,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서 확연히 차이나는 점이 있는데, 죄 다 고음병 성애자들이 환장할만한 높은 음역을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임창정의 작곡가로서 원상우의 가장 큰 의의는 제일 처음으로 임창정스러움과 대중적 선호를 조화시키는 법을 아는 작곡가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원상우의 가장 큰 장점은 얼마지나지 않아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되었는데 7집이후 그가 임창정에게 선물한 곡들은 대중적인 요소가 많이 파괴된 면모를 보입니다.
즉, 임창정이라는 문맥안에서 원상우의 리즈시절은 6~7집, 그 중에서도 6집이었다는 것.
7집 이후 임창정과의 연을 끊은 것은 아니었으나 임창정 특유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곡은 두번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
원상우의 곡들은 임창정 뮤직 유니버스에서는 신세계였는데 임창정 본인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작곡가였던 점입니다.
실제로 6집 나의 연인의 경우에는 가장 임창정스러움의 요소 (고음과 꺾는 창법)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들으면 깊이 빠져들만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물론 조규만 곡에서도 임창정 특유의 꺾는 창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규만 곡이 임창정 창법을 억압하는 방향이었다면 원상우는 임창정을 최대한 지지하면서 어떻게 대중적으로 잘 어필할 수 있는지 아는 작곡가였습니다.
원상우의 곡이 임창정의 임창정스러움을 잘 표현하면서도 6~7집 한정으로 조규만의 곡들과 비교했을 때 대중적인 면모가 부족하다고 평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절정을 찍은 게 바로 7집의 '날 닮은 너'였는데, 이는 나중에 "임창정 노래 키 어디까지 올려봤니"라고 얘기할 때 무조건 언급되는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원상우 작곡가의 노래의 특성이라 하면,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서 확연히 차이나는 점이 있는데, 죄 다 고음병 성애자들이 환장할만한 높은 음역을 자랑했다는 것입니다.
임창정의 작곡가로서 원상우의 가장 큰 의의는 제일 처음으로 임창정스러움과 대중적 선호를 조화시키는 법을 아는 작곡가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원상우의 가장 큰 장점은 얼마지나지 않아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게 되었는데 7집이후 그가 임창정에게 선물한 곡들은 대중적인 요소가 많이 파괴된 면모를 보입니다.
즉, 임창정이라는 문맥안에서 원상우의 리즈시절은 6~7집, 그 중에서도 6집이었다는 것.
7집 이후 임창정과의 연을 끊은 것은 아니었으나 임창정 특유의 스타일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곡은 두번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
8. 이동원
9. 멧돼지
그는 복귀 이후 계속 중박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었으나, 현재 젊은 층에게 그의 이름을 다시 알리고, 현재까지의 전성기를 이어올 수 있는 데에는 멧돼지 작곡가의 공이 컸습니다.
12집부터 합류하여 "또 다시 사랑(2015)"부터 임창정과 동업하며, "내가 저지른 사랑"(2016), "그 사람을 아나요"(2017),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2018), "십삼월(never ending)"(2019), "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2020), "별거 없던 그 하루로"(2021) 등 수많은 타이틀곡을 작업했습니다.
공동작곡인 만큼 둘의 팀워크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12집부터 합류하여 "또 다시 사랑(2015)"부터 임창정과 동업하며, "내가 저지른 사랑"(2016), "그 사람을 아나요"(2017),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2018), "십삼월(never ending)"(2019), "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2020), "별거 없던 그 하루로"(2021) 등 수많은 타이틀곡을 작업했습니다.
공동작곡인 만큼 둘의 팀워크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 영화
연도
|
제목
|
활동
|
관객수
|
흥행
|
1990년
|
남부군
|
조연
|
37만명
|
성공
|
장미여관
|
단역
|
-
|
-
|
|
1992년
|
섬강에서 하늘까지
|
단역
|
-
|
-
|
걸어서 하늘까지
|
단역
|
-
|
-
|
|
1994년
|
게임의 법칙
|
단역
|
-
|
-
|
1997년
|
비트
|
조연
|
35만명
|
성공
|
1998년
|
엑스트라
|
주연
|
8만 2,000명(서울)
|
실패
|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
주연
|
20만명(서울)
|
부진
|
|
2000년
|
행복한 장의사
|
주연
|
12만명(서울)
|
실패
|
자카르타
|
주연
|
70만명
|
실패
|
|
2001년
|
두사부일체
|
우정출연
|
-
|
-
|
2002년
|
해적, 디스코 왕 되다
|
주연
|
130만명
|
성공
|
색즉시공
|
주연
|
420만명
|
성공
|
|
2003년
|
위대한 유산
|
주연
|
225만명
|
성공
|
낭만자객
|
우정출연
|
-
|
-
|
|
역전에 산다
|
특별출연
|
-
|
-
|
|
2004년
|
시실리 2km
|
주연
|
200만명
|
성공
|
2005년
|
파송송 계란탁
|
주연
|
110만명
|
성공
|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
주연
|
254만명
|
성공
|
|
2006년
|
아치와 씨팍
|
주연
|
10만명
|
실패
|
2007년
|
만남의 광장
|
주연
|
130만명
|
성공
|
1번가의 기적
|
주연
|
275만명
|
성공
|
|
스카우트
|
주연
|
31만명
|
실패
|
|
색즉시공 2
|
주연
|
209만명
|
성공
|
|
2009년
|
청담보살
|
주연
|
132만명
|
성공
|
2010년
|
육혈포 강도단
|
조연
|
123만명
|
성공
|
불량남녀
|
주연
|
49만명
|
실패
|
|
2011년
|
사랑이 무서워
|
주연
|
40만명
|
실패
|
2012년
|
비처럼 음악처럼
|
주연
|
미개봉
|
-
|
공모자들
|
주연
|
164만명
|
성공
|
|
2013년
|
창수
|
주연
|
43만명
|
실패
|
2014년
|
기술자들
|
특별출연
|
-
|
-
|
2015년
|
치외법권
|
주연
|
35만명
|
실패
|
2016년
|
대결
|
우정출연
|
-
|
-
|
2017년
|
로마의 휴일
|
주연
|
13만명
|
실패
|
2018년
|
게이트
|
주연
|
10만명
|
실패
|
11. 뮤지컬
연도
|
작품명
|
비고
|
1993년
|
동숭동연가
|
|
마의태자
|
||
에비타
|
||
2009년
|
빨래 - 솔롱고 역
|
5개 도시
|
2010년
- 2011년 |
라디오 스타 - 매니저 박민수 역
|
6개 도시
|
2012년
- 2013년 |
벽을 뚫는 남자 - 듀티울 역
|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
|
2022년
|
미세스 다웃파이어 - 다니엘 역
|
한국 초연
샤롯데씨어터 |
12. 콘서트
연도
|
콘서트명
|
비고
|
1998년
|
1998 임창정 콘서트
|
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 총 3회
|
1999년
|
1999 임창정 콘서트
|
3개 도시, 총 7회
|
2013년
|
청춘나이트 시즌 2
|
|
2014년
|
흔한노래.. 흔한 멜로디..
|
9개 도시, 총 10회
|
"SHOW MAN"
|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 총 2회
|
|
2015년
- 2016년 |
My Story
|
10개 도시, 총 12회
|
2016년
|
JTN 콘서트
|
|
I'M THE 형
|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 총 2회
|
|
2017년
|
서울대학교 행복 기부 콘서트
|
|
2018년
|
JTN 콘서트
|
|
2018년
- 2019년 |
"IM CHANG JUNG"
|
국내 15도시, 해외 4도시 총 20회
|
2019년
|
롯데면세점 패밀리콘서트
|
|
The Christmas Show
|
잠실실내체육관, 총 2회
|
|
2020년
|
평창 평화 페스티벌
|
|
2022년
|
서원밸리 자선 그린 콘서트
|
서원밸리컨트리클럽 골프장
|
2022년 임창정 전국투어 콘서트 ‘Multiverse'
|
국내 9도시
|
- 단독콘서트는 총 59회 개최했으며 전국투어는 2014년, 2015-16년, 2018-19년 총 3번 개최했습니다. 2022년 6월부터 전국콘서트를 돌 예정입니다.
13. 컴백 쇼케이스
연도
|
앨범명
|
비고
|
2016년 9월 5일
|
I'M
|
|
2017년 10월 23일
|
그 사람을 아나요
|
|
2019년 9월 6일
|
십삼월
|
1부 쇼케이스
2부 팬사인회 및 식사 |
2020년 10월 19일
|
힘든 건 사랑이 아니다
|
온라인 쇼케이스
|
2021년 11월 1일
|
별거 없던 그 하루로
|
오프라인 & 온라인 쇼케이스
|
2023년 02월 08일
|
멍청이
|
오프라인 쇼케이스
|
14. 광고
연도
|
기업명
|
브랜드명
|
비고
|
1997년
|
빙그레
|
빙그레 초코지오
|
|
빙그레 뉴면
|
|
||
조선맥주
|
하이트
|
|
|
한솔PCS
|
한솔 PCS 원샷 018
|
||
1998년
|
롯데칠성음료
|
롯데칠성 사각사각
|
|
삼성전자
|
삼성 애니콜
|
||
2000년
|
한국정보통신
|
한국정보통신 엔메트로닷컴
|
|
IMC
|
IMC
|
||
2002년
|
동양과
|
감자팝
|
|
SK텔레콤
|
SK텔레콤 TING
|
||
해태제과
|
해태제과 2&4
|
||
코니카
|
코니카필름
|
|
|
2003년
|
다음
|
다음커뮤니케이션
|
|
2004년
|
우정사업본부
|
우체국택배
|
|
2005년
|
오뚜기
|
오뚜기 그대로카레, 짜장
|
|
2008년
|
코카콜라
|
코카콜라 제로(더빙)
|
|
2014년
|
엔씨소프트
|
리니지 - 전사의 탄생
|
|
2015년
|
LG U+
|
LG U+ tv G 4K UHD
|
|
2016년
|
잡코리아
|
알바몬
|
|
넷마블
|
레이븐
|
||
주식회사 그린
|
투다리
|
||
2017년
|
광동제약
|
광동 헛개차
|
|
히어로즈
|
레전드 스포츠 히어로즈
|
||
히어로즈
|
레전드 야구교실
|
|
|
히어로즈
|
레전드 스크린 야구존
|
|
|
2021년
|
BLANKOZONE NETWORK KOREA
|
갑부: 장사의 시대
|
|
2022년
|
농심
|
사천 백짬뽕
|
15. 기타
- 홍스구락부 dnega.com
16. 홍보대사
연도
|
홍보대사명
|
2001년
|
금연 홍보대사
|
2009년
|
대한야구협회 아마야구 홍보대사
|
2013년
|
경기경찰 홍보대사
|
2017년
|
오산시 홍보대사
|
17. 코로나19 확진 관련
2021년 11월 9일 오후 8시경 방송 녹화 참여를 위해 코로나(PCR)검사를 받은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본래 녹화 예정이었던 코미디빅리그를 비롯한 다른 예능들은 취소하고 신곡 활동도 중단하였습니다.
당연히 백신 접종 후 돌파감염 사례라고 생각했으나 백신을 안 맞았다고 하였습니다.
해당 기사 임창정이 이번 앨범 활동을 위해 나온 유튜브 영상들 댓글에도 백신과 관련해서 비속어를 사용하며 욕을 먹고 있습니다.
백신접종은 자유이긴 하지만, 마스크를 벗고 사람들과 접촉하는 연예인 특성상 활동을 하려고 했다면 응당 접종을 했어야 했다는 것.
미접종자는 접종자보다 전파력이 월등하게 강하게 때문에 차라리 아예 행사를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이후 임창정과 접촉한 사람과 식장의 모든 인원이 검사를 받았으며 아이유를 비롯해 뮤지컬배우 손준호도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공지를 올렸습니다.
다행히 접촉한 사람들이 모두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임창정이 미접종자였다는 사실 또한 꽤 논란이 됐는데, 자신의 앨범 쇼케이스에는 백신패스나 PCR 검사 음성 확인서를 지참하도록 했으나 정작 가수 본인은 미접종자여서 크게 비판받았습니다.
2021년 11월 19일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고 생활치료센터에서 퇴소하였고 동시에 격리도 해제되었습니다.
퇴소 당일, 임창정은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식 사과문을 올렸고, 이에 소속사 측에서도 사과문을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올렸습니다.
그로 인하여 현재 어떠한 활동도 없이 자숙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사과문1 사과문2 소속사 공식 사과문임창정 공식 사과문 안녕하세요 임창정입니다.
우선 여러모로 걱정 끼쳐드리게 되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팬 여러분, 동료, 가족 등, 저로 인해 속상하셨을 많은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올립니다.
이런 못난행동에도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지난 2주 잘 격리하고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어 그간 심정과 감사한 마음 전하려 이렇게 몇자 적어봅니다! 인생을 살며 그간 수없이 많은 선택과결정 이라는 것을 하며 살아 왔거늘, 왜 이 나이를 먹고도 이토록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 처신을 했는지 너무나도 저를 지켜보는많은 분들과 가족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으면서 솔선 모범이 돼야함을 늘 인지하고 살아야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책임감 없는 행동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민폐를 끼치고 걱정을 드리다니요.
참.
많이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고 면목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주신 쓴소리와 채찍 잘 기억하고 명심해 실망 시켜드린 것보다두배 세배로 여러분들께서 다시 미소를 찾을 수 있도록 더 많이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지난 긴 시간을 이제 겨우 이겨내며 위드 코로나 시대로 가는 이 엄중하고 진지한 시기에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도리를 못하고 찬물을 끼얹고 정신을 못 차리고있었다는 거! 참으로 바보같은 이 모습이 너무나 창피하고 속상합니다.
이 고단한 날들로부터 어서 빨리 우리 모두 웃을 수 있도록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로 인해 실망하셨을 모든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문에서 백신 접종 여부에 관한 언급이 없는터라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지만, 이후 2차 백신 접종까지 마쳤으며 90일이 지나기 전 부스터샷까지 맞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후 2022년 2월 4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서 코로나19 여파로 고생하는 의료진을 위해 노개런티 공연으로 복귀 활동을 했습니다.
때문에 본래 녹화 예정이었던 코미디빅리그를 비롯한 다른 예능들은 취소하고 신곡 활동도 중단하였습니다.
당연히 백신 접종 후 돌파감염 사례라고 생각했으나 백신을 안 맞았다고 하였습니다.
해당 기사 임창정이 이번 앨범 활동을 위해 나온 유튜브 영상들 댓글에도 백신과 관련해서 비속어를 사용하며 욕을 먹고 있습니다.
백신접종은 자유이긴 하지만, 마스크를 벗고 사람들과 접촉하는 연예인 특성상 활동을 하려고 했다면 응당 접종을 했어야 했다는 것.
미접종자는 접종자보다 전파력이 월등하게 강하게 때문에 차라리 아예 행사를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이후 임창정과 접촉한 사람과 식장의 모든 인원이 검사를 받았으며 아이유를 비롯해 뮤지컬배우 손준호도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공지를 올렸습니다.
다행히 접촉한 사람들이 모두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임창정이 미접종자였다는 사실 또한 꽤 논란이 됐는데, 자신의 앨범 쇼케이스에는 백신패스나 PCR 검사 음성 확인서를 지참하도록 했으나 정작 가수 본인은 미접종자여서 크게 비판받았습니다.
2021년 11월 19일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고 생활치료센터에서 퇴소하였고 동시에 격리도 해제되었습니다.
퇴소 당일, 임창정은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식 사과문을 올렸고, 이에 소속사 측에서도 사과문을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올렸습니다.
그로 인하여 현재 어떠한 활동도 없이 자숙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사과문1 사과문2 소속사 공식 사과문임창정 공식 사과문 안녕하세요 임창정입니다.
우선 여러모로 걱정 끼쳐드리게 되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팬 여러분, 동료, 가족 등, 저로 인해 속상하셨을 많은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올립니다.
이런 못난행동에도 걱정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지난 2주 잘 격리하고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어 그간 심정과 감사한 마음 전하려 이렇게 몇자 적어봅니다! 인생을 살며 그간 수없이 많은 선택과결정 이라는 것을 하며 살아 왔거늘, 왜 이 나이를 먹고도 이토록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 처신을 했는지 너무나도 저를 지켜보는많은 분들과 가족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으면서 솔선 모범이 돼야함을 늘 인지하고 살아야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책임감 없는 행동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민폐를 끼치고 걱정을 드리다니요.
참.
많이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고 면목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주신 쓴소리와 채찍 잘 기억하고 명심해 실망 시켜드린 것보다두배 세배로 여러분들께서 다시 미소를 찾을 수 있도록 더 많이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지난 긴 시간을 이제 겨우 이겨내며 위드 코로나 시대로 가는 이 엄중하고 진지한 시기에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도리를 못하고 찬물을 끼얹고 정신을 못 차리고있었다는 거! 참으로 바보같은 이 모습이 너무나 창피하고 속상합니다.
이 고단한 날들로부터 어서 빨리 우리 모두 웃을 수 있도록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로 인해 실망하셨을 모든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문에서 백신 접종 여부에 관한 언급이 없는터라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지만, 이후 2차 백신 접종까지 마쳤으며 90일이 지나기 전 부스터샷까지 맞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후 2022년 2월 4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서 코로나19 여파로 고생하는 의료진을 위해 노개런티 공연으로 복귀 활동을 했습니다.
임창정,걸그룹,전부인,멍청이,아이돌,소주 한 잔 가사,나이,노래,저작권,내가 저지른 사랑 가사,프로필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