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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자/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의 대한 정리

by 생생기자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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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五大洋集團自殺事件
발생지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북리 산 210
유형
집단자살
원인
사이비 종교
사망
32명
위치

1. 소개

 

 

 

2. 박순자와 오대양의 창립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당시 48세)가 오대양이라는 사이비 종교와 기업을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박순자는 1974년 횡격막에 병이 생겨 고통받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병이 회복되는 일을 겪었다고 주장했으나, 사이비 종교 특성상 거짓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어쨌든 박순자는 신 덕분에 병이 나았다고 믿었는지 신학교를 다니다가 여호와의 증인에 입교했고, 다시 기독교복음침례회(소위 (권신찬·유병언파) 구원파)에 출석하기도 했습니다.
박순자는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을 데리고 이탈하여, 1984년 5월에 대전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사이비 종교 겸 회사인 오대양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오대양이라는 교명은 박순자가 "나는 오대양을 지배할 사람으로 앞으로 전 세계를 주관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공언한 데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먼저, 1984년에 민속공예품 제조사 오대양을 만든 뒤,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민속 공예품 제조로 대통령상은 물론 88올림픽 공식 협력 업체로 지정되면서 회사의 명성은 커져 갔고, 이후 대전과 용인 등의 공장을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또한 제조 사업 외에도 유치원, 양로원, 고아원 건물을 사들이거나 임대해 사회 사업을 하였으며, 시설을 당시로선 최신식으로 꾸며 고아를 잘 키우는 모습을 보였기에, 당시 대전에선 오대양의 평판이 아주 좋았고, 박순자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이자 여성의 워너비로 평판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도들의 자녀를 고아로 위장한 것이고, 이들을 세뇌하여 아이들에게 "부모는 없고 너희는 고아이며 박순자만이 진짜 어머니"라고 유도했으며, 심지어 아이들에게 "부모를 찾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소리도 공공연히 했습니다.
더불어 신도 및 그 자녀에게 공동생활을 강요했고, 그 과정에서 신도들을 사람답지 않게 통제했습니다.
그리고 매월 한 번씩 '반성의 시간'이라는 것을 가졌는데, 이 때 신도들은 한 달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실토하고, 규율을 어겼음이 드러나면 벌이라는 명목으로 가차 없이 집단구타를 당했습니다.
일례로 딸이 어머니가 잘못한 것을 처벌한다면서 어머니를 두들겨패고 어머니는 이것을 감사해하는 황당한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오대양 사건 이후 사건의 열쇠를 쥔 것으로 주목받았던 오대양 총무 노순호, 기숙사 가정부 황숙자, 육아원 보모 조재선 등이 이미 사건 발생 전에 반성의 시간에서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오대양 직원에게 살해된 뒤 암매장당했던 것까지 밝혀졌습니다.

 

3. 박순자의 실체

 

  • 박순자는 사채로 돈을 빌리면서 매우 높은 이자를 단 한 번도 연체하지 않고 꼬박꼬박 갚았습니다.(물론 이건 신도들에게서 걷은 헌금으로 갚은 것입니다.) 또한 높은 이자를 은행 계좌로 보내어 신뢰성을 주었습니다.
  • 박순자는 무려 전두환의 표창, 그러니까 대통령상을 여러 개 수상했습니다. 그 외에도 자치단체장상도 꽤 많이 받았습니다.
  • 박순자는 이미 지역 유지 겸 자선사업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4. 박순자의 사업 실패와 사채

 

그러나 1986년 4월, 일본의 모 전자 부품 생산업체와 합작해 당시로선 대단한 거액인 7억 원을 투자해 전자제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사기를 당했고 사업은 실패했습니다.
이 손실을 메꾸기 위해 박순자는 신도들에게 사채를 많이 끌어오라고 명하고, 신도들은 자신의 일가친척에게도 돈을 빌려서 박순자에게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박순자가 신도들을 굴려 끌어모은 사채는 무려 170억 원에 달했는데, 갚지는 않고 사채만 끌어 쓰니, 당연히 채무자에게 독촉과 사채 이자가 쌓여갔습니다.
그러다 1987년 8월 16일, 박순자에게 5억 원을 빌려준 이상배라는 사람이 빌려준 돈을 갚으라는 독촉하려고 부인과 함께 오대양 공장을 찾았다가, 신도들에게 집단 구타 당하다 못해 채무포기각서까지 강요받자, 분을 참지 못하고 경찰에 오대양을 고소했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들의 만행에 더 이상 참다 못한 다른 채권자도 박순자와 오대양을 고소했으며, 경찰은 사기 혐의로 박순자를 조사했고, 사회에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엄청난 사채 이자를 더는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경찰과 언론의 압박까지 계속되자, 박순자는 전 신도들과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80명과 함께 오대양 용인 공장으로 모이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중 자신과 자녀들, 가장 투자자금을 많이 끌어모은 신도들을 합해 총 32명만을 골라 식당 천장에 올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공장 창고 안의 구석 공간에 4일 동안 숨겼습니다.
.

 

5. 집단 자살

 

1987년 8월 29일, 오대양 직원 김영자는 용인의 공장에 왔다가 내려앉은 숙소의 천장을 보고 이상히 여겨 식당 쪽으로 갔는데, 식당 천장에서 죽어 있는 박순자를 포함한 32명을 발견하고, 마침 가족을 찾으러 공장에 온 박순자의 남편 이기정에게 알렸습니다.
그 후 박순자의 남편 이기정이 경찰에 오후 4시 무렵에 신고해, 집단 변사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사건 현장을 발견한 사람들과 담당 형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천장 위의 상황은 단순히 참혹함은 물론 그 이상을 넘어 매우 기괴한 모습이었습니다.
왜냐면 천장 위에 있던 빈 공간에는 코와 입이 휴지로 채워져 있고, 속옷 또는 잠옷 차림을 하고 있던 시신이 각각 이불을 쌓아 놓은 것처럼 각각 19명, 12명씩 쌓여 있었으며, 그 먼 곳에는 공장장인 이경수가 속옷 차림으로 서까래에 목을 맨 채 죽어 있었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사건 현장 정리 도중 사망자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메모가 발견되었는데, "사장이 독약과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라거나 "xx도 지금 매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 "xx가 꿈을 꿨는데, 그곳이 지옥이라고 하더라.
", "남자는 다 잡혀가고 여자들은 다 헤어지고.
"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으며, 이 메모와 부검을 통해 추정한 사망시각은 발견 전날과 발견 당일이었습니다.
메모 내용과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은 말 못할 상황 때문에, 처음에는 타살당했거나 사람들이 집단으로 음독하고 죽은 것으로 추측했지만, 경찰의 부검 결과 독극물은 나오지 않았고, 대신 하이드라민이라는 신경안정제 성분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시신 모두 경부 압박으로 인한 교살이 사망 원인이었고, 결정적으로 이들 모두 교살로 인한 저항 흔적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메모지 뒷면에는 메모에 대한 답변을 이경수가 작성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반대다.
완전 도전입니다.
넘기면 개발비 불게 하는 겁니다.
모두 나를 팔았기 때문입니다.
절대 입 닫아라.
이미 의식 없으시다.
네 시간 전부터 다섯 명 정도 갔습니다.
오늘 중으로 거의 갈 것 같습니다.
결국 경찰은 가장 먼저 박순자가 공장장 이경수에게 자신을 교살시키고, 뒤이어 이경수가 김길환과 여자들을 교살시킨 뒤, 박순자의 두 아들들이 철골 서까래에 줄을 매고 자살하고, 이경수가 교살된 시신을 2개의 더미로 나눠서 쌓아 놓은 뒤, 마지막으로 이경수 스스로가 목을 메어 자살했다고 판단했으며, 사망자들이 스스로 멀미약과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즉 자의적으로 한 타살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쉽사리 죽을 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사건 날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이었고,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천장 온도를 재 봤더니 70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게다가 통풍도 제대로 안 되는 천장이다 보니, 도피 기간인 4박 5일 동안 이미 신도들은 탈수 현상으로 인해, 거의 가사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에 제대로 저항할 힘도 없었습니다.
현장감식 결과, 쇠고기라면 5박스가 그대로 있었으며, 김영자가 갖다 준 주먹밥도 20여개가 그냥 버려져 있었는데, 이는 탈수현상으로 식욕마저 없어진 상태라는 뜻이었습니다.
특히, 시체 중 교주 박순자의 시체의 부패가 제일 심했던 걸로 봐, 박순자가 먼저 죽었다는 것이며, 사이비 종교 신도들 특성상 교주를 따라가고자 했던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더구나 가장 열성 신도였던 그들은 빚이 어마어마했습니다.
3~4억원 이상의 빚을 가진 경우가 절대다수였는데, 당시는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이 1억원, 은마아파트 1채가 3천만원 하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2023년 기준으로, 1인당 빚이 몇십억 원 이상이라는 얘기입니다.
21세기에도 3~4억이면 굉장히 큰 돈인데, 그 당시의 화폐 가치가 2023년의 10배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일반인이 갚는 건 불가능한 액수였습니다.
즉, 설사 살아남아도 평생 빚쟁이로 사는 암울한 상황이 펼쳐질 게 뻔했기 때문에, 이미 살 의지도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그렇게 믿고 따른 교주의 죽음과 빚쟁이로서 살아남아도 이도 저도 할 수조차 없다는 마음이 겹쳐 집단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며, 사실 이것 외에는 이 비상식적인 상황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당시 발견된 메모 중 매일 주먹밥을 갖다 준 김영자가 남긴 "이렇게 숨어있지만 말자.
사장님이 나서서 해결하면 모두가 나아질 것입니다.
"라는 내용의 메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영자는 주먹밥과 함께 이 메모를 박순자에게 전달하려고 식당 천장을 계속해서 노크를 했는데, 한동안 반응이 없다가 이경수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나타나 그녀에게 화를 냈습니다.
이때는 이미 이경수가 박순자의 지시를 받아 천장에 숨은 이들을 살해하고 있었습니다.
시신들은 부검 후 발견 이틀만에 화장됐습니다.
그러나 사망자의 사망 정황은 드러났지만, 이 사람들이 집단으로 왜 자살했는지는 명확히 드러난 바가 없었던지라, 경찰 당국은 사건의 열쇠를 쥔 것으로 보이는 오대양 직원 11명을 공개 수배했습니다.
결국 1991년 7월, 수배 중이던 오대양 직원 중 6명이 자수하면서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재조사되었고, 검찰 수사 결과 1987년의 경찰 수사와 동일하게 32명의 집단자살 사건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6. 사망자 명단

 

  • 박순자 일족: 박순자(48, 1939년생, 오대양 교주), 이영호(24, 1963년생, 박순자의 장남), 이재호(21, 1966년생, 박순자의 차남), 이경진(19, 1968년생, 박순자의 딸)
  • 오대양 간부: 김길환(39, 1948년생 오대양 공장장), 이경수(45, 1942년생, 오대양 공장장)
  • 오대양 직원: 김명순(54, 1933년생, 학사 사감), 곽남옥(33, 1954년생, 학사 보모),
  • 일반 신도: 문말주(38, 1949년생), 김용자(26, 1961년생), 남옥자(40, 1947년생), 유재순(55, 1932년생), 김재온(56, 1931년생), 최정숙(45, 1942년생), 박봉희(27, 1960년생), 오현숙(34, 1953년생), 박효임(33, 1954년생), 민상옥(34, 1953년생), 김숙희(35, 1952년생), 남승자(44, 1943년생), 권응수(37, 1950년생), 이정호(35, 1952년생), 장애희(35, 1952년생), 유원례(56, 1931년생), 이인애(25, 1962년생), 박하진(21, 1966년생), 이선희(29, 1958년생), 조귀복(28, 1959년생), 이정은(21, 1966년생), 조희진(22, 1965년생), 강석순(36, 1951년생), 황숙자(35, 1952년생)

 

7. 오대양 사건, 의혹과 밝혀진 내용

 

당시 세간에는 죽은 사람들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자살을 강요받았고, 심지어 타인의 손으로 살해당했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앵커였던 손석희는 임의대로 집단 타살이라고 방송했습니다.
또한, 국회의원 박찬종이 1991년 7월 19일 기자회견을 이용해, 박순자가 한때 몸 담았던 구원파와 그 신도가 경영하던 모 회사가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제기하여 일파만파 번지기도 했습니다.
구원파가 사건에 개입되었을 것이라고 의심한 사람들은 박순자가 실제로는 구원파를 이탈하지 않았고, 모종의 이유 때문에 구원파를 이탈한 척하며 오대양을 차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순자는 구원파의 대전 지역 자금조달 책임자였고, 오대양은 외부의 돈을 끌어모으려는 구원파의 위장 계열사로 구원파 신도가 경영하던 모 회사의 자금을 마련하고자, 박순자가 오대양을 차리고 신도들에게 거액의 사채를 끌어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대양이 세간에서 주목받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구원파나 모 회사가 박순자와 다른 31명을 살해했다는 것이, 당시 세간에 떠돈 타살 의혹의 골자였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도 제기되었던 내용인데, 실제로 오대양과 구원파 계열 사업체간 자금 거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내역이 일부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순자가 오대양 설립 이전에 물품 대금을 구원파 교인에게 사업관계로 송금한 사실이 있는데, 이는 정상적인 거래일 뿐 오대양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거액의 오대양 사채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갔냐는 관심에 대해 수사 결과, 어디론가 유입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오대양이 고율의 사채 이자를 갚는 데 쓰인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위의 의혹은 송금 관련 오해와 오대양에서 구원파 관련 회사에 한 차례 정도 인형을 구매한 적이 있는 점, 박순자가 한 때 구원파에 잠시 출석한 점이 있었던 점 등이 지나치게 확대해석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실제로 오대양 사건은 1987년과 1988년, 그리고 1991년에 정권(전두환, 노태우)이 바뀔 때마다 세 차례나 재조사받은 결과 외부 세력과 관련이 없는 집단 자살로 동일하게 결론이 났고, 구원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으로 종결되었습니다.
당시 언론들에 의해 유병언 전 세모 회장 역시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그려지고 그로 인해 구속 및 형을 살았다는 보도가 많이 쏟아졌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 수사 결과, 오대양 사건 관련해서는 전부 무혐의였으며, 그와 전혀 다른 별건 수사인 과거의 이미 불기소된 상습사기죄로 4년형을 선고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대양 사건의 배후처럼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상습사기죄는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다는 내용으로, 이에 대해서도 유병언 전 회장은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고, 살아있는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유병언 전 회장과 오대양 간의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뭐라도 체포할 혐의가 필요해진 상황에서 별건 수사인 과거의 불기소된 사건을 억지로 들춰내어 혐의를 씌우고 형을 살게 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기도 합니다.
후일에는 이 사건을 두고, 월간조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정경 등의 언론에서는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은 언론의 지나친 보도 경쟁과 일부 정치인의 정치적 이용 등이 어우러진 사례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구원파는 2014년 당시 금수원을 진입하려던 검찰에게 오대양 문제와 연관 없음을 정확히 밝히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를 보면, 과거의 이 누명이 그 때까지 그들에게 상처받고 억울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 , 이로 인해, 인천지방검찰청은 실제 공문을 통해 오대양 사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과거 검찰에서 철저하게 수사했고, 해당 사건이 구원파와 관계 없다고 다시 한 번 밝혀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모처에서 살해당하고서 공장 식당의 천장으로 옮겨졌다고 주장했지만, 사건 현장을 감식했던 경관은 현장의 상황상 다른 곳에서 살해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검찰도 1987년에 경찰이 결론을 내린 대로 32명 중 박순자를 포함한 29명은 목이 졸려 살해당했고, 박순자의 두 아들과 공장장 이경수는 목을 매 죽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에 사건을 수사한 검사였던 박영수 변호사는 2014년 인터뷰에서 "현장을 봤다면, 타살 의혹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타살설을 강하게 부정한 바가 있고, "국회에서 5공 비리 청문회 때 재조사가 있었죠.
저도 법무부에 6개월간 비공식적으로 파견돼서 그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국회 조사에서도 오대양 사건에 유병언씨가 연루됐다거나 5공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의혹의 출발점이 되는 타살에 대한 새로운 증거도 없었고요.
1991년 조사는 그 해 7월 오대양 관계자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그 조사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991년 당시 유병언씨를 검찰이 구속했지만 유씨의 구속은 오대양 사건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상습사기 혐의였습니다.
"라고 인터뷰한 내용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대양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최후의 목격자인 할머니가 실종되었다는 보도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굉장히 많은 추측들이 제기되었지만, 이후에 할머니는 딸이 모시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한편, 박순자의 남편인 이기정 당시 충청남도청 건설국장도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으나, 이 사람은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기정은 사건 이후 사표를 냈습니다.

 

8. 이야기들

 

  • 이 사건은 6.10 민주 항쟁 이후,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던 와중에 터져나와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박순자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무려 270여 명에 달했고, 이 사람들은 이후 5공 특위에 오대양 사건도 조사해 달라고 요구해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딱히 새로운 것이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 MBC 뉴스데스크에서 당시 앵커였던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면서 이 사건을 전했는데, 손석희는 이 사건을 본인 표현으로 변괴스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 9년 전 가이아나에서 벌어진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과 두루 유사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습니다.
  • 1998년에 개봉된 퇴마록 영화판의 초반에 오대양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경찰 특공대가 사교 집단의 아지트에 출동했는데, 건물에서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경찰 특공대원의 보안경 위로 핏방울이 하나 떨어지고, 천장을 수색하니 집단 자살한 사교 신도들의 시체들이 발견되는 대목이 그것. 천장 위에서 시체들이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오대양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 온 듯합니다.
  • 2010년 하성란이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A'라는 소설을 냈습니다.
  • 월간조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정경 등 일부 언론에서는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은 언론의 지나친 보도 경쟁과 이권에 관련된 제보자들의 편파스러운 제보, 일부 정치인의 정치상 이용 등이 어우러져 근거 없는 추측과 오보의 대표 사례라고 주장했습니다.(출처: '그것이 알고싶다 공식계정' 유튜브)
  • 오대양 사건을 상대로 삼아, '구원파 배후설', '구원파 소행'을 강하게 주장했던 탁명환, 정동섭은 당시 구원파에 명예훼손으로 피소되어 재판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참고로 탁명환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이비 종교 전문가로서 잡지 《현대종교》를 발행했고, 결국 이단 시비가 붙었던 대성교회(現 평강제일교회) 신자에게 살해당한 사람입니다. 여담으로 2019년 영화 사바하에서 사이비 종교를 추적하는 박목사(이정재)가 탁명환 소장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 이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 사건이 언론보도로 재조명되었습니다. 금수원에서 농성 중에 구원파에서는 세월호 사건과 오대양 사건을 비교하면서, 91년 당시 오대양과 구원파를 연결짓는 자극적 언론플레이로 인해 정부가 감추고 싶어하던 몇 가지 사건이 무마되었습니다. 당시 유병언 전 회장이 무관했기에 당당히 출두했지만, 그 길로 바로 구속되어 오대양과 관련 없는 사건과 거짓 증언으로 4년형을 살았다는 내용을 성명서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 2014년 5월 14일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스포츠서울닷컴 보도에 의하면, 구 오대양 용인공장 건물은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갔습니다. 당시 취재 결과, 신도 시신들이 발견된 식당 건물은 이미 철거된 후였고, 세화정밀 측이 생산설비를 이전한 후 생산 활동이 없어서 토지와 건물만 남은 채 매물만 나왔지만, 값이 비싸 어느 누구도 사지 않았습니다. 특히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오대양 사건이 재조명될 때 건물 근처에는 경비원이 상주하기도 했습니다. 사흘 전에는 탁지원 현대종교 소장이 찾아간 바 있습니다.
  •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장기 미제 전담반에서 미제 사건을 맡게 되면서 경사 김계철이 오대양 사건을 계속 언급합니다. 작중에서 다룬 미제 사건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이름 등을 약간 바꿨지만, 이 사건 같은 경우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습니다.(출처: 'tvN DRAMA' 유튜브)
  • OCN 드라마 <구해줘>에서는 신도를 구타하고 암매장하는 등,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거나 패러디한 듯한 장면이 많이 보입니다.
  • 2020년 11월 26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1 10화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 2023년 3월 3일, 넷플릭스에서 다루었습니다.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참조.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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