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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김완선
金緩宣 | Kim Wan-S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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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김완선 (金緩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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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9년 5월 16일 (53세)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반포동
(現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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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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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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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64cm, 45kg, B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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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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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성남, 어머니 한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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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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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잠원초등학교 (졸업)
세화여자중학교 (졸업) 세화여자고등학교 (중퇴) 하와이 대학교 (디지털아트학 / 학사) |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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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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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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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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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
KWSun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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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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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집 앨범 '독집 제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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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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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돈나, 완디, 퀸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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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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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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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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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영원한 댄싱 퀸Mnet 레전드 아티스트 100에서의 소개 문구대한민국의 가수.
2. 상세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 섹시 콘셉트를 본격적으로 정형화시킨 대표적인 가수.
노출에 의한 노골적인 섹시 콘셉트가 아닌, 김완선 특유의 농염한 표정 연기로 섹시한 분위기를 어필하며 당시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당대 최고의 여성 댄스 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는 장르를 넘어 한국 여성가요계를 인기로 완전히 평정한 인기 원톱 여가수였습니다.
댄스 실력으로는 대한민국 여가수 역사상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실력은 지금까지도 건재합니다.
한국의 마돈나라는 말을 처음들은 여가수이자 섹시디바다.
가창력 부분은 데뷔 당시부터 여러 안 좋은 말이 있었지만 이후 꾸준히 노력을 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초기에 가창력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들었다 해도 당대에 인정받은 다른 여가수들과 비교해 그렇다는 것일 뿐, 지금도 가창력 부족을 지적 받고 있는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아이돌 여가수 수준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도 1집 시절부터 종종 라이브로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립싱크 모드일 때는 화려하기 그지 없는 춤을 선보이는데 비해 라이브 때는 정적인 동작만 보여줬습니다.
그러다 최고 전성기인 5집에 이르면 립싱크 때만큼의 화려한 춤은 아니라도 춤과 자연스러운 라이브 노래를 동시에 선보일 정도에 이릅니다.
고음이 빼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김완선에 대해 논의할 때 의외로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은 특유의 비음이 섞인 음색.
나미나 김정미, 훗날의 조원선과 유사한 쿨하고 독특한 음색으로 유명했으며, 시대가 조금 늦어 본격적인 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EDM)의 시대에 데뷔했다면 훨씬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이런 쿨한 톤은 오토튠이나 보코더 등 일렉트로니카의 보컬 이펙터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대중가수로서 누구나 목소리를 들으면 알만한 고유의 음색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히 축복받은 일입니다.
김창훈이 프로듀서를 맡았던 2집 시절에도 타이틀로 내세웠던 곡들 이외의 노래들을 보면 김완선의 음색을 살리려한 노래들이 많았고, 이장희가 맡았던 3집의 경우에는 너무 음색 쪽을 살리려다 김완선의 댄스가수로서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손무현은 5집에서 김완선의 음색과 댄스가수로서의 능력을 합칠 수 있는 곡들을 만들어냈고 결과는 대박으로 이어졌습니다.
댄스가수임에도 앨범은 록음악 관련 인물들과의 접점이 많습니다.
박광호, 김창훈, 박청귀, 손무현 같은 인물들은 전부 록음악을 기본으로 했던 사람들.
그래서인지 앨범들을 들어보면 이런 곡을 김완선이 불렀나 싶을 정도로 록음악 성향이 강한 곡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완선의 히트곡들에서도 보통 댄스곡과는 달리 내지르는 듯한 창법으로 부른 부분들이 나오는 건 저런 앨범 관련 인물들 때문입니다.
한데 1, 2집 시절의 록음악 성향 곡들은 김완선의 가창력에 대한 평가를 깎아먹는데 일조한 면도 있습니다.
당시 곡들이 김완선이 가진 가창력 이상의 고음을 요구한 탓에 고음을 내기 위에 목을 쥐어짜다 음이 툭툭 갈라지는게 노래에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4집 정도에 이르러선 록 성향의 곡도 적당히 소화해냈습니다.
이런 록음악과의 접점을 보면 2011년의 신곡인 수퍼러브가 록 스타일인 것도 뜬금없는 건 아닌 셈입니다.
월간 윤종신 2012년 3월호에 수록된 록 발라드곡 '널 사랑해 오늘따라'에서 보컬을 맡았는데 이 또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노출에 의한 노골적인 섹시 콘셉트가 아닌, 김완선 특유의 농염한 표정 연기로 섹시한 분위기를 어필하며 당시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당대 최고의 여성 댄스 가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는 장르를 넘어 한국 여성가요계를 인기로 완전히 평정한 인기 원톱 여가수였습니다.
댄스 실력으로는 대한민국 여가수 역사상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실력은 지금까지도 건재합니다.
한국의 마돈나라는 말을 처음들은 여가수이자 섹시디바다.
가창력 부분은 데뷔 당시부터 여러 안 좋은 말이 있었지만 이후 꾸준히 노력을 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초기에 가창력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들었다 해도 당대에 인정받은 다른 여가수들과 비교해 그렇다는 것일 뿐, 지금도 가창력 부족을 지적 받고 있는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아이돌 여가수 수준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도 1집 시절부터 종종 라이브로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립싱크 모드일 때는 화려하기 그지 없는 춤을 선보이는데 비해 라이브 때는 정적인 동작만 보여줬습니다.
그러다 최고 전성기인 5집에 이르면 립싱크 때만큼의 화려한 춤은 아니라도 춤과 자연스러운 라이브 노래를 동시에 선보일 정도에 이릅니다.
고음이 빼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김완선에 대해 논의할 때 의외로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은 특유의 비음이 섞인 음색.
나미나 김정미, 훗날의 조원선과 유사한 쿨하고 독특한 음색으로 유명했으며, 시대가 조금 늦어 본격적인 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EDM)의 시대에 데뷔했다면 훨씬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이런 쿨한 톤은 오토튠이나 보코더 등 일렉트로니카의 보컬 이펙터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대중가수로서 누구나 목소리를 들으면 알만한 고유의 음색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히 축복받은 일입니다.
김창훈이 프로듀서를 맡았던 2집 시절에도 타이틀로 내세웠던 곡들 이외의 노래들을 보면 김완선의 음색을 살리려한 노래들이 많았고, 이장희가 맡았던 3집의 경우에는 너무 음색 쪽을 살리려다 김완선의 댄스가수로서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손무현은 5집에서 김완선의 음색과 댄스가수로서의 능력을 합칠 수 있는 곡들을 만들어냈고 결과는 대박으로 이어졌습니다.
댄스가수임에도 앨범은 록음악 관련 인물들과의 접점이 많습니다.
박광호, 김창훈, 박청귀, 손무현 같은 인물들은 전부 록음악을 기본으로 했던 사람들.
그래서인지 앨범들을 들어보면 이런 곡을 김완선이 불렀나 싶을 정도로 록음악 성향이 강한 곡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완선의 히트곡들에서도 보통 댄스곡과는 달리 내지르는 듯한 창법으로 부른 부분들이 나오는 건 저런 앨범 관련 인물들 때문입니다.
한데 1, 2집 시절의 록음악 성향 곡들은 김완선의 가창력에 대한 평가를 깎아먹는데 일조한 면도 있습니다.
당시 곡들이 김완선이 가진 가창력 이상의 고음을 요구한 탓에 고음을 내기 위에 목을 쥐어짜다 음이 툭툭 갈라지는게 노래에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4집 정도에 이르러선 록 성향의 곡도 적당히 소화해냈습니다.
이런 록음악과의 접점을 보면 2011년의 신곡인 수퍼러브가 록 스타일인 것도 뜬금없는 건 아닌 셈입니다.
월간 윤종신 2012년 3월호에 수록된 록 발라드곡 '널 사랑해 오늘따라'에서 보컬을 맡았는데 이 또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5. 1996~2005년
한국으로 컴백과 함께 1996년 11월에 발표한 7집 타이틀곡 '탤런트'가 가요톱10에서 최고 4위까지 랭크됐고 30만장(비공식)정도 팔려 이름값을 했지만 과거 김완선 음반에 비해서는 망한 앨범이었습니다.
사실 타이틀곡인 '탤런트'에 표절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일찍 내릴 수 밖에 없었고 그 당시 김완선 앨범을 공동 제작했던 한백희의 제자 김광수가 PD 비리 사건으로 고발되어 MBC 출연이 정지되었고 SBS에서도 출연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김광수는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 제작을 이유로, 대만에 가 있던 김완선의 차를 그녀의 의견 없이 팔아 치워버리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더 소름끼치는 건 이 사실을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혔다는 것입니다.
김완선이 2011년 복귀했을 당시 그에게 찾아가 그때 왜 그랬냐고 말하자, 할말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완선 복귀 당시에도 자신이 제작했던 가수인냥 언플하면서 그녀의 복귀가 기다려진다고 말하는 걸 봐서는 확실히 보통 제정신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녀의 7집 컴백을 기념해서 MBC에서 김완선 특집 방송을 방영할 예정으로 보도까지 한 상황이었지만 해당 사건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취소되었고 방송 금지까지 당하는 바람에 KBS 빅쇼에서 치러졌고 당시 김완선의 특집 방송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MBC에서 출연 금지되었으나 문화방송 계열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정상적으로 출연했는데 부산MBC에서 방송된 특집쇼에 출연한 적 있었습니다.
MBC 계열사는 각각 별개의 방송국이지만 MBC가 주주에 참여하고 MBC란 이름으로 쓰고 있는 케이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 후속곡 '운명의 장난'으로 활동 곡을 교체했지만 20위 권에 잠시 머문 정도였으며 앨범 자체도 능력 있는 프로듀서들과 함께한 덕에 이미지 이상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던 이전 앨범들에 비하면 평이한 수준이었습니다.
'김완선의 제작자 데뷔'로 홍보했던 댄스 그룹인 '오룡비무방' 이 참담하게 망하고 1998년, 가수로서 자신이 활동한 데 대한 금전적인 대가를 한번도 정식으로 주지 않은 이모와 결국에 결별했고 이후 4년 정도 TV에서 김완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한백희는 이미 김완선의 이름으로 온갖 빚을 져놓고 있었고, 그녀는 이를 갚기 위해 밤무대 출연과 온갖 행사를 마다하지 않고 뛰어야 했습니다.
2002년 내놓은 'S', 'Shall We Dance'와 리메이크 음반은 비교적 생소한 트랜스 테크노 장르였습니다.
이 음반이 4만장 정도 팔리면서 생각보다 이름값을 해냈지만 빚문제는 여전한 상황이었으며, 결국 2003년 누드 사진집까지 찍었지만 누드 사진집을 찍고도 애초에 계약한 만큼의 돈을 받지도 못했고 사진집 문제로 트러블이 생긴 소속사와의 소송으로 고생만 했습니다.
당시 소속사는 다음 앨범 계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고, 김완선은 이것이 계약 파기 사유가 된다라는 이유로 소속사와는 별도로 누드 사진집 제의에 동의를 했습니다.
당시는 여배우들의 누드사진집이 폭주하던 시대였고, 김완선은 빚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계약금 5억원에 러닝 개런티 포함.
이에 소속사가 반발하여 주택은 물론이고 김완선의 저축통장까지 압류했고, 누드사진집을 낸 곳은 이런 사정을 이용해서 누드사진집의 판매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계약금 5억 중에서 2억 밖에 못 준다고 배째라가 되었습니다.
김완선은 밤무대를 뛰면서 2개의 소송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습니다.
소속사와는 계약 해지 선에서 마무리되었고 사진집 기획사에게는 승소했습니다.
2005년 말에 9집 앨범 'Return'을 발표했으며 자전적인 노래라 할 수 있는 발라드 'Seventeen'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우고 직접 프로듀싱에 참가했지만, 일반 대중들이 김완선에게 기대하는 것과는 너무 간격이 큰 음악이었고, 왜 갑자기 그런 내용의 가사를 노래하는지도 골수팬들 이외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아 진지한 의도가 아쉽게도 잘 전달되지 못하고 망했습니다.
김완선 스스로는 예상치 못한 낯뜨거운 가사라 여전히 떨떠름할 뿐이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처음 받았던 느낌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2011년 4월 컴백 후 출연한 김승우의 승승장구 녹화 중 9집의 'Seventeen'을 부르던 도중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서 지켜보는 방청객이나 MC들 모두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17세는 실제로 김완선이 방송에 정식으로 데뷔한 나이고, '작은 TV 속에 살면서 인형처럼 웃고 있는 너'로 시작하는 가사는 김완선의 삶 그 자체이다 보니 노래 자체에 대한 감회도, 그리고 그 노래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타이틀곡인 '탤런트'에 표절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일찍 내릴 수 밖에 없었고 그 당시 김완선 앨범을 공동 제작했던 한백희의 제자 김광수가 PD 비리 사건으로 고발되어 MBC 출연이 정지되었고 SBS에서도 출연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김광수는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 제작을 이유로, 대만에 가 있던 김완선의 차를 그녀의 의견 없이 팔아 치워버리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더 소름끼치는 건 이 사실을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혔다는 것입니다.
김완선이 2011년 복귀했을 당시 그에게 찾아가 그때 왜 그랬냐고 말하자, 할말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완선 복귀 당시에도 자신이 제작했던 가수인냥 언플하면서 그녀의 복귀가 기다려진다고 말하는 걸 봐서는 확실히 보통 제정신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녀의 7집 컴백을 기념해서 MBC에서 김완선 특집 방송을 방영할 예정으로 보도까지 한 상황이었지만 해당 사건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취소되었고 방송 금지까지 당하는 바람에 KBS 빅쇼에서 치러졌고 당시 김완선의 특집 방송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MBC에서 출연 금지되었으나 문화방송 계열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정상적으로 출연했는데 부산MBC에서 방송된 특집쇼에 출연한 적 있었습니다.
MBC 계열사는 각각 별개의 방송국이지만 MBC가 주주에 참여하고 MBC란 이름으로 쓰고 있는 케이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 후속곡 '운명의 장난'으로 활동 곡을 교체했지만 20위 권에 잠시 머문 정도였으며 앨범 자체도 능력 있는 프로듀서들과 함께한 덕에 이미지 이상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던 이전 앨범들에 비하면 평이한 수준이었습니다.
'김완선의 제작자 데뷔'로 홍보했던 댄스 그룹인 '오룡비무방' 이 참담하게 망하고 1998년, 가수로서 자신이 활동한 데 대한 금전적인 대가를 한번도 정식으로 주지 않은 이모와 결국에 결별했고 이후 4년 정도 TV에서 김완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한백희는 이미 김완선의 이름으로 온갖 빚을 져놓고 있었고, 그녀는 이를 갚기 위해 밤무대 출연과 온갖 행사를 마다하지 않고 뛰어야 했습니다.
2002년 내놓은 'S', 'Shall We Dance'와 리메이크 음반은 비교적 생소한 트랜스 테크노 장르였습니다.
이 음반이 4만장 정도 팔리면서 생각보다 이름값을 해냈지만 빚문제는 여전한 상황이었으며, 결국 2003년 누드 사진집까지 찍었지만 누드 사진집을 찍고도 애초에 계약한 만큼의 돈을 받지도 못했고 사진집 문제로 트러블이 생긴 소속사와의 소송으로 고생만 했습니다.
당시 소속사는 다음 앨범 계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고, 김완선은 이것이 계약 파기 사유가 된다라는 이유로 소속사와는 별도로 누드 사진집 제의에 동의를 했습니다.
당시는 여배우들의 누드사진집이 폭주하던 시대였고, 김완선은 빚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계약금 5억원에 러닝 개런티 포함.
이에 소속사가 반발하여 주택은 물론이고 김완선의 저축통장까지 압류했고, 누드사진집을 낸 곳은 이런 사정을 이용해서 누드사진집의 판매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계약금 5억 중에서 2억 밖에 못 준다고 배째라가 되었습니다.
김완선은 밤무대를 뛰면서 2개의 소송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습니다.
소속사와는 계약 해지 선에서 마무리되었고 사진집 기획사에게는 승소했습니다.
2005년 말에 9집 앨범 'Return'을 발표했으며 자전적인 노래라 할 수 있는 발라드 'Seventeen'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우고 직접 프로듀싱에 참가했지만, 일반 대중들이 김완선에게 기대하는 것과는 너무 간격이 큰 음악이었고, 왜 갑자기 그런 내용의 가사를 노래하는지도 골수팬들 이외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아 진지한 의도가 아쉽게도 잘 전달되지 못하고 망했습니다.
김완선 스스로는 예상치 못한 낯뜨거운 가사라 여전히 떨떠름할 뿐이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처음 받았던 느낌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2011년 4월 컴백 후 출연한 김승우의 승승장구 녹화 중 9집의 'Seventeen'을 부르던 도중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서 지켜보는 방청객이나 MC들 모두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17세는 실제로 김완선이 방송에 정식으로 데뷔한 나이고, '작은 TV 속에 살면서 인형처럼 웃고 있는 너'로 시작하는 가사는 김완선의 삶 그 자체이다 보니 노래 자체에 대한 감회도, 그리고 그 노래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7. TV
- KBS 유머 1번지1991년 400회 동작그만
- 1991년 400회 동작그만
- MBC 단편 드라마 국물 있사옵니다1987년
- 1987년
- MBC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32005년 9월 12일 Ep. 2유치장에 갇힌 엽기 살인마 역할로 특별출연했습니다.
- 2005년 9월 12일 Ep. 2유치장에 갇힌 엽기 살인마 역할로 특별출연했습니다.
- 유치장에 갇힌 엽기 살인마 역할로 특별출연했습니다.
- KBS 2TV 위기탈출 넘버원2006년 2월 4일 Ep. 27 (with. 조형기, 김정민, 김현철, 이성진)게스트 패널로 출연. with에 적힌 4명은 고정 패널입니다.
- 2006년 2월 4일 Ep. 27 (with. 조형기, 김정민, 김현철, 이성진)게스트 패널로 출연. with에 적힌 4명은 고정 패널입니다.
- 게스트 패널로 출연. with에 적힌 4명은 고정 패널입니다.
- MBC 소울메이트2006년 3월 27일 Ep. 3
- 2006년 3월 27일 Ep. 3
- KBS 2TV 개그콘서트 감수성2011년 11월 6일 Ep. 618선정성에서 잡혀온 포로라는 컨셉으로 특별출연했습니다.
- 2011년 11월 6일 Ep. 618선정성에서 잡혀온 포로라는 컨셉으로 특별출연했습니다.
- 선정성에서 잡혀온 포로라는 컨셉으로 특별출연했습니다.
- JTBC 아는 형님2019년 4월 27일 ep. 177 《김완선, 바다, 소유, 러블리즈 케이》바다 소유 러블리즈 케이와 함께 요정 특집으로 출연하였습니다.희철에 의하면 가요계의 원조 고양이상이라고 합니다..자신의 머리카락이 원래 곱슬이라고 하였고, 러블리즈의 Ah-Choo를 준비하여 선보였습니다. 데뷔 초 활동 당시 소방차를 라이벌로 여겼다고 합니다. 앞으로 무거운 연기를 도전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서장훈의 이야기에 의하면 90년대 초반 김완선이 홍콩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22세 이하이자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이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과 홍콩에서 경기를 하러 왔는데 홍콩까지 온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텅 빈 경기장에서 혼자 응원하러 간 적이 있다고 합니다.
- 2019년 4월 27일 ep. 177 《김완선, 바다, 소유, 러블리즈 케이》바다 소유 러블리즈 케이와 함께 요정 특집으로 출연하였습니다.희철에 의하면 가요계의 원조 고양이상이라고 합니다..자신의 머리카락이 원래 곱슬이라고 하였고, 러블리즈의 Ah-Choo를 준비하여 선보였습니다. 데뷔 초 활동 당시 소방차를 라이벌로 여겼다고 합니다. 앞으로 무거운 연기를 도전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서장훈의 이야기에 의하면 90년대 초반 김완선이 홍콩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22세 이하이자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이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과 홍콩에서 경기를 하러 왔는데 홍콩까지 온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텅 빈 경기장에서 혼자 응원하러 간 적이 있다고 합니다.
- 바다 소유 러블리즈 케이와 함께 요정 특집으로 출연하였습니다.희철에 의하면 가요계의 원조 고양이상이라고 합니다..자신의 머리카락이 원래 곱슬이라고 하였고, 러블리즈의 Ah-Choo를 준비하여 선보였습니다. 데뷔 초 활동 당시 소방차를 라이벌로 여겼다고 합니다. 앞으로 무거운 연기를 도전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서장훈의 이야기에 의하면 90년대 초반 김완선이 홍콩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22세 이하이자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이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과 홍콩에서 경기를 하러 왔는데 홍콩까지 온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텅 빈 경기장에서 혼자 응원하러 간 적이 있다고 합니다.
-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2019년 8월 12일 ep. 40 《김완선, 김정남》2022년 11월 2일 ep. 201 《김완선, 최성국》
- 2019년 8월 12일 ep. 40 《김완선, 김정남》
- 2022년 11월 2일 ep. 201 《김완선, 최성국》
- MBC 언니네 쌀롱2019년 12월 2일 Ep. 5 《영원한 마돈나》눈썹 문신을 했다고 합니다. 본인의 머리카락이 악성 곱슬로 불만인 듯 합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휜 코뼈가 자신의 얼굴에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하였습니다.
- 2019년 12월 2일 Ep. 5 《영원한 마돈나》눈썹 문신을 했다고 합니다. 본인의 머리카락이 악성 곱슬로 불만인 듯 합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휜 코뼈가 자신의 얼굴에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하였습니다.
- 눈썹 문신을 했다고 합니다. 본인의 머리카락이 악성 곱슬로 불만인 듯 합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휜 코뼈가 자신의 얼굴에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하였습니다.
- 채널A 침묵예능 아이콘택트2020년 3월 23일 Ep. 32김완선을 짝사랑하는 브루노와 김정남이 설전을 벌이던 중 등장해 삼자대면을 하게 되었고, 대화를 나눈 끝에 데이트 상대로 브루노를 선택했습니다.
- 2020년 3월 23일 Ep. 32김완선을 짝사랑하는 브루노와 김정남이 설전을 벌이던 중 등장해 삼자대면을 하게 되었고, 대화를 나눈 끝에 데이트 상대로 브루노를 선택했습니다.
- 김완선을 짝사랑하는 브루노와 김정남이 설전을 벌이던 중 등장해 삼자대면을 하게 되었고, 대화를 나눈 끝에 데이트 상대로 브루노를 선택했습니다.
- JTBC 유랑마켓2020년 3월 29일 Ep. 7
- 2020년 3월 29일 Ep. 7
- JTBC 히든싱어6코로나19로 인하여 2020년 9월 28일 네이버 TV를 통해 온라인 언택트 녹화가 진행되었으며, 2020년 10월 16일 방송되었습니다.
- 코로나19로 인하여 2020년 9월 28일 네이버 TV를 통해 온라인 언택트 녹화가 진행되었으며, 2020년 10월 16일 방송되었습니다.
- MBC 라디오 스타2012년 6월 13일 Ep. 2372016년 10월 19일~10월 26일 Ep. 448~4492018년 8월 15일 Ep. 5292021년 5월 19일 Ep. 7212022년 8월 31일 Ep. 783
- 2012년 6월 13일 Ep. 237
- 2016년 10월 19일~10월 26일 Ep. 448~449
- 2018년 8월 15일 Ep. 529
- 2021년 5월 19일 Ep. 721
- 2022년 8월 31일 Ep. 783
8. 수상 내역
- 2019년2019 제10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장관 표창링크
- 2019 제10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장관 표창링크
9. 이모와의 관계
한백희가 스파르타식으로 춤을 가르치고 그걸 배웠는데, 지금의 연습생 개념의 선구라면 선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데뷔 준비하느라 거의 3년동안 부모 집에도 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사 당시 이모가 살던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7년간 고립되어 살았는데 지금도 외진 축이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외진 곳이 도봉구 방학동이었습니다.
무릎팍 도사 출연 당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한백희는 길거리 댄서, 무용수들에게 연습실을 무료로 내어주는 대신 김완선을 트레이닝 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김완선은 그 당시에 스트릿 댄스, 발레, 현대 무용 등 다양한 춤들을 하드하게 트레이닝받으며 일종의 연습생 생활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마침 김완선이 데뷔 준비를 하던 시기가 이수만이 연예기획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때라 이는 이수만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말그대로 연습생 시스템의 원조였습니다.
그녀와 한백희의 질긴 인연은 한백희의 작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옷도 그녀가 맞췄고 안무도 그녀가 짜주었고, 김완선은 이모 한백희 때문에 전성기 시절에도 사람들을 마음대로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완선에게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으며 200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릎팍도사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김완선은 데뷔 후 1998년 그녀의 이모와 결별하기까지 13년 동안 가수 활동에 대한 금전적인 대가를 한 번도 정식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 당시 이모부의 사업이 잘 안 풀려 그쪽으로 돈이 들어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한백희가 따로 사치를 하거나 하는 일 없이 옷 2~3벌로 사계절을 버티고 병원비가 아까워서 아파도 병원에 잘 안가고 장신구 같은 건 전혀 사지도 않는 검소한 생활을 했기 때문.
이에 김완선은 차라리 이모가 자신을 위해서 돈을 사용했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후 한백희는 건강이 악화된 후에 응급실에 자주 갔는데 당시 비참한 상황에서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김완선밖에 없어서 돈을 빌려달라고 자주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김완선은 할 수 없이 돈을 빌려주었지만 워낙 악연이었기에 왜 과거에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주지 않았냐는 말을 했고 한백희는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했다고 하며 그리고 김완선은 그게 자신이 이모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은 KBS2TV 승승장구 (2011년 4월 26일) 에 나와서 이모 한백희에 대하여 한 얘기입니다.
"저의 모든 거, 좋은 거, 나쁜 거까지 다.
저의 부모님이기도 하고 선생님이기도 하고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어떤 무대는 안좋게 끝날 때도 있는데 같이 속상해 하기도 하고, 어떤 일이 잘돼서 성사되면 같이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되풀이되고.
그러다가 보니까 제가 남자를 만날 수가 없었어요" "제발 좀 빨리 원망과 미움이 사라지길 바랐는데 이제는 많이 없어진 것 같고.
" "이모 이제 원망이나 분노는 없으니까 편히 쉬세요.
미안해 하지 말고" 승승장구에서 MC들의 "왜 남자가 없었나"라는 질문에 당시 이모의 엄청난 과보호 때문에 남자를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결혼 계획에 대해선 지금 (2011년) 40대 나이에 결혼할 수는 없고 나중에 50~60대가 됐을 때나 결혼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팬들 중에서는 자신과 이모를 파국으로 내 몰았던 이모부 때문이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2009~2010년 즈음 리즈 시절의 레이디 가가와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화장 짙게 하면 거의 엇비슷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데뷔 준비하느라 거의 3년동안 부모 집에도 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사 당시 이모가 살던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7년간 고립되어 살았는데 지금도 외진 축이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외진 곳이 도봉구 방학동이었습니다.
무릎팍 도사 출연 당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한백희는 길거리 댄서, 무용수들에게 연습실을 무료로 내어주는 대신 김완선을 트레이닝 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김완선은 그 당시에 스트릿 댄스, 발레, 현대 무용 등 다양한 춤들을 하드하게 트레이닝받으며 일종의 연습생 생활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마침 김완선이 데뷔 준비를 하던 시기가 이수만이 연예기획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때라 이는 이수만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말그대로 연습생 시스템의 원조였습니다.
그녀와 한백희의 질긴 인연은 한백희의 작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옷도 그녀가 맞췄고 안무도 그녀가 짜주었고, 김완선은 이모 한백희 때문에 전성기 시절에도 사람들을 마음대로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완선에게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으며 200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릎팍도사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김완선은 데뷔 후 1998년 그녀의 이모와 결별하기까지 13년 동안 가수 활동에 대한 금전적인 대가를 한 번도 정식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 당시 이모부의 사업이 잘 안 풀려 그쪽으로 돈이 들어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한백희가 따로 사치를 하거나 하는 일 없이 옷 2~3벌로 사계절을 버티고 병원비가 아까워서 아파도 병원에 잘 안가고 장신구 같은 건 전혀 사지도 않는 검소한 생활을 했기 때문.
이에 김완선은 차라리 이모가 자신을 위해서 돈을 사용했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후 한백희는 건강이 악화된 후에 응급실에 자주 갔는데 당시 비참한 상황에서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김완선밖에 없어서 돈을 빌려달라고 자주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김완선은 할 수 없이 돈을 빌려주었지만 워낙 악연이었기에 왜 과거에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주지 않았냐는 말을 했고 한백희는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했다고 하며 그리고 김완선은 그게 자신이 이모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은 KBS2TV 승승장구 (2011년 4월 26일) 에 나와서 이모 한백희에 대하여 한 얘기입니다.
"저의 모든 거, 좋은 거, 나쁜 거까지 다.
저의 부모님이기도 하고 선생님이기도 하고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어떤 무대는 안좋게 끝날 때도 있는데 같이 속상해 하기도 하고, 어떤 일이 잘돼서 성사되면 같이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되풀이되고.
그러다가 보니까 제가 남자를 만날 수가 없었어요" "제발 좀 빨리 원망과 미움이 사라지길 바랐는데 이제는 많이 없어진 것 같고.
" "이모 이제 원망이나 분노는 없으니까 편히 쉬세요.
미안해 하지 말고" 승승장구에서 MC들의 "왜 남자가 없었나"라는 질문에 당시 이모의 엄청난 과보호 때문에 남자를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결혼 계획에 대해선 지금 (2011년) 40대 나이에 결혼할 수는 없고 나중에 50~60대가 됐을 때나 결혼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팬들 중에서는 자신과 이모를 파국으로 내 몰았던 이모부 때문이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2009~2010년 즈음 리즈 시절의 레이디 가가와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화장 짙게 하면 거의 엇비슷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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