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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 아들 SM 데뷔 관련 윤상의 관한 이야기

by 생생기자 202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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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

윤상
Yoonsang
본명
이윤상 (李潤相, Lee Yoonsang)
출생
1968년 5월 11일 (55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불광동
(現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국적
 
대한민국
 
 
행정구
 
신체
180cm, 65kg, O형
가족
배우자 심혜진(1975년생, 2002년 결혼 ~ 현재)
장남 이찬영(2003년 5월 2일생)
차남 이준영(2009년 6월 30일생)
학력
예일초등학교 (졸업)
연서중학교 (졸업)
충암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산업대학 (요업공예학 / 학사)
버클리 음악대학 (뮤직신서시스학 / 학사)
뉴욕 대학교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소속 그룹
페이퍼 모드, 노땐스, 1Piece
데뷔
1990년 11월 30일, 정규 1집 '윤상'
별명
뮤지션들의 뮤지션, 발라드의 조상, 러블리즈의 아버지, 독거노인, 윤마담, 록단장, 허리 긴 형

1. 소개

 

대한민국의 가수, 음악가, 작곡가, 베이시스트.
1988년 무렵부터 작곡가 및 세션 베이시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그 해 발매된 가수 김현식의 정규 4집 앨범 수록곡인 '여름밤의 꿈'을 작곡하여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이후 2년 뒤인 1990년에 본인의 정규 1집 '윤상'을 발매하며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
발라드 가수로 활동할 때는 본인 특유의 감성적인 곡 스타일과 더불어 잘생긴 외모, 고운 미성과 함께 수많은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며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와 같은 여러 히트곡도 작곡하면서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로도 탄탄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실험적인 면모가 강해지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선구자 격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0년대엔 일렉트로닉부터 아이돌 음악까지 섭렵하고 있습니다.
김현철, 손무현, 유정연 등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을 80년대까지의 트로트 위주의 전통가요 시대에서 90년대 이후의 현대음악 시대로 바꾸는데 상당한 공로를 한 뮤지션 중 하나입니다.

 

2. 데뷔 이전

 

1989년 김완선의 백밴드시절 연주 모습
1989년 이승철 세션 시절 연주 모습

 

3.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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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 윤상.jpg

 

4. 소속사와의 갈등과 군입대

 

1집의 엄청난 성공 후, 소속사 사이에 갈등이 꽤 심했습니다.
1집의 대중적인 성공 후, 소속사(와 광수 사장)는 계속해서 윤상을 아이돌+대중가요 노선으로 끌고 가려 했으나 윤상은 이제 번 돈으로 장비도 다 구비했으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해 보고 싶다며 이견을 보였습니다.
신인 가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1등을 받는 게 뮤지션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이 출연을 거부해 괘씸죄로 방송 금지를 먹기도 했고,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와중에도 "난 스튜디오 뮤지션인데 왜 이런 걸 하고 있나…" 하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는 또 이런 생각이 바뀌어서 예능에 고정출연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인터뷰에서도 소녀 팬들을 몰고 다니던 시기가 그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다른 일 할 거에요.
저는 연주자·작곡자·편곡자로서 가수 주변에 머무르는 게 좋은데, 얼떨결에 인기 가수가 됐죠.
낮엔 아이돌 스타처럼 살고 밤엔 곡 쓰는 뮤지션으로 돌아오고….
제일 먼저 놓아버리고 싶었던 건 가수였어요.
” 라고 대답했습니다.
덕분에 2집은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1년 차이로 part 1, part 2라는 괴상한 형태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파트 1(100만 장)은 1집(90만장)처럼 인기가 좋았지만, 파트 2는 30만 장으로 상대적으로 부진했습니다.
거기에 갑자기 가수 은퇴를 발표했다가 번복하는 등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후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를 계속해서 연기를 하던 윤상 앞으로 1993년 5월에 입대 영장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그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며 병역 기피 논란으로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결국 1993년 12월 현역으로 입대하며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자세한 건 아래서 후술.
그에게 군입대로 인한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원하는 악기를 맘대로 사지 못했다는 것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늘 절친인 작사가 박창학이 수고했어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현재까지도 윤상이 그렇게 아끼는 미니무그.
또 군복무 당시 알바트로스의 음악 감독을 맡아 OST를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5. 전역 후

 

전역한 후 1996년 복귀작으로 리메이크 앨범인 Renacimiento(레나시미엔토.
스페인어로 르네상스)를 발표했습니다.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윤상이 불렀던 신곡은 딸랑 2곡(벽, 배반)뿐이고, 2집 파트1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를 샘플링해온 것으로 보이는 1분 짜리 연주곡인 Eco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6개 트랙이 자신이 불렀거나 작곡했던 예전 히트곡들을 이탈리아/프렌치 팝/남미 음악 풍으로 재편곡한 후 해당 국가 보컬들에게 그 나라의 국어로 번안한 가사로 부르게 한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그때까지 계속 윤상에게 따라다니던 일본 음악 표절설에 대한 항변격으로 낸 것입니다.
위의 작업을 통해 자기는 일본 음악이 아니라 월드뮤직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윤상은 월드뮤직, 특히 남아메리카 쪽 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김형석, 성시경이 “윤상은 툭하면 ‘야 이거 이탈리아의 무명 뮤지션 b-side의 곡이랑 진행이 비슷한데?”라고 한다며 투덜대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음악이 외국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 나라 언어로 가사를 붙이면 어떨 지 궁금했던 것도 이 앨범의 기획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판매량은 10만 장 남짓에 그쳤습니다.
같은 해에는 신해철과 함께 프로젝트 팀 노땐스를 결성하고, <골든 힛트>라는 제목의 앨범을 냅니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테크노/전자음악 앨범인데, 이후 상당한 희귀 음반이 되었습니다.
훗날 S.
E.
S가 리메이크한 노래 <달리기>도 이 앨범에 실려있습니다.
1998년에는 지금까지 윤상의 최고 역작이라 불리는 싱글 앨범 "Insensible"을 발표했으며, 이승환이 프로듀싱했습니다.
2000년 6월에는 윤상의 정규 앨범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앨범이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81위에 랭크된 앨범인 3집 'Cliché'를 발표합니다.
데뷔부터 제대까지, 초반에는 외국 곡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곡들과 오빠부대로 시작했으나 이런 일련의 작업들로 오빠부대 아이돌 연예인에서 본좌 뮤지션으로 정체성이 확립됩니다.
그러면서 대중적 인기는 멀어져갔습니다.

 

6. 아내와의 동반 유학

 

2003년 즈음해서 미국 보스턴의 명문 버클리 음악대학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학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유학을 갔습니다.
당시 그냥 프로듀싱이나 작곡을 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었는데, 신디사이저나 제작과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 알고 싶었지만 국내에서 정보를 구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기도 하고, 더 이상 음악 작업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유학을 떠났다고 합니다.
후에 밝히기를 유학을 결정할 당시에 "어렸을 적 '나는 나중에 이런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그 꿈을 이루어 버려서 더이상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 데뷔해 성공, 남들이 받들어 주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어린 사람들과, 그것도 자기가 알아서 하는 분위기의 미국에서 여러 모로 생각도 많이 바뀌고 배운 것도 많은 듯합니다.
그냥 놀러 간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왔습니다.
때문에 유학을 마친 후 피부고 뭐고 더 이상 예전의 연예인스러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근데 당시 한 TV 프로그램에 윤상을 만나러 갔던 나경은을 포함한 여자 아나운서들은 여전히 멋있다고 말하기도.
암튼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했는데, 말을 바꾼 건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디션을 봐야 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베이스 연습을 다시 했으나 탈락.
나중엔 그래도 밤새가면서 공부해서 성적 장학금을 좀 받았다 합니다.
이때 부인과의 일화가 있습니다.
부인 심혜진 씨가 필수 교양과목 등 본인 전문분야가 아닌 쪽은 윤상이 맨날 “여보 숙제 해줘” 라고 해서 네 숙제를 왜 내가 하냐며 성질을 내면서 해 줬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물론 윤상은 그때마다 “네가 우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유학 가자고 했잖아.
” 설득해서 결국 해줬으며 유학 중에 잠깐 나왔던 모 방송에서는 핼쑥해져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원래는 학부만 마치고 올 예정이었지만 공부에 불이 붙어 졸업한 후 다시 NYU 대학원 뮤직 테크놀로지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작곡 편곡이 아닌 사운드 메이킹을 배워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멜로디가 아니라 소리 구성요소들의 디자인 같은 것.
유학 계획도 중간에 바뀌고, 아이도 둘이나 태어나고해서 학비와 생활비 관계로 공부하랴 일하랴 엄청 빡세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는 누들로드의 OST와 DMB 방송을 잠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누들로드는 본인이 영상음악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승낙한 이유도 있습니다.
유학 중에 잠깐 국내로 들어와서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게스트로 나와서 말하기를 "유희열 씨도 가정에 충실하고 싶으면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대한민국에서는 나가면 '와~ 가수다', '와~ 연예인이다' 하면서 이리 오세요, 저리 가보세요 하지? 여긴 그런 거 없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거야.
"라고 유학생활의 소고를 밝힌 바가 있습니다.
유학 전 SM엔터테인먼트으로 이적했는데, 당시 SM의 이미지는 강렬한 춤과 용모로 승부하는 댄스가수를 양성하는 곳이었던 고로 충격과 공포를 불러왔습니다.
'윤상이 이제 자기 음악을 못 하는 거냐'며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다고.
본인은 그런 건 모르고 그냥 계약 조건이 제일 좋아서 승낙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작권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10억 정도의 계약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계약은 매니지먼트 계약이 아니라 정규앨범 4~5집 발매, 프로젝트 앨범 1장 등 일 관련 계약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윤상은 SM의 자본력과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고, SM은 이미지 쇄신 + 윤상의 프로듀싱과 곡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꽤 좋은 계약이었던 셈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윈윈한 계약이었던 것.
덕분에 윤상은 아직도 SM을 좋게 평가하고 있으며, 보아와 동방신기 등의 소속 가수들과 꾸준히 작업 중입니다.
우연하게도 오랜 후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평양 공연에는 SM의 Red Velvet이 함께했습니다.
.

 

7. 유학 이후 근황

 

2010년이 되어서야 7년간의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귀국과 동시에 상명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강단에 서게 되었고, 이 후 성신여자대학교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직에 취임, 2017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2018년부터는 용인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과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주목받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 업계에서 밀려난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노래 외에도 꾸준히 음반 작업에 참여하며 갈고닦은 실력을 업계에서 인정받고, 왕성히 활동 중입니다.
윤상이 SM으로 영입된 후에는, '다시 만난 세계'처럼 반주(instrumental version)까지 단독으로 선보일 수 있을만큼 더 공들여 내놓은 노래들이 앨범에 더 많이 들어가게 됐다고 합니다.
2013년 후반부터 2014년 초까지는 East4A와 함께 아이유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HISTORY의 '난 너한테 뭐야',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순서대로 내놓았습니다.
최근은 1Piece 결성으로 합작이 좀 뜸해진졌습니다.
부인 심혜진씨와 같이 빅터 우튼이 쓴 책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9월엔 디지털 싱글 날 위로하려거든을 발표했으며, 이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 올해의 노래,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등 2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것은 물론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를 수상하였다! 트로피를 집 안에 장식해둔 것은 물론, 수상내역을 자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윤상이 후일 무한도전에서도 정준하에게 이 상을 보여주며 '흔히 날 발라드 전문 작곡가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성과도 거뒀다'고 자랑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음을 강조한 것으로 봐서 굉장히 자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2014년 11월 데뷔한, 자신의 작곡 팀인 1Piece로 울림엔터테인먼트의 첫 걸그룹인 러블리즈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특히 데뷔 앨범 Girls' Invasion의 타이틀곡 'Candy Jelly Love'를 비롯한 총 5곡을 작곡, 편곡했습니다.
더불어 2015년 10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함께 출연하였고 11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 녹화에 출연했을 때도 러블리즈 멤버들과 함께하는 등 방송에 동반 출연하여 아빠처럼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덕분에 러블리즈 팬들이 윤상을 좋아합니다.
특히나 희대의 명곡이자 여전히 인기 있는 러블리즈의 대표곡 'Ah-Choo'는 많은 이들이 윤상이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안 뒤 윤상의 소녀감성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평론가들은 전반적으로 러블리즈라는 팀은 윤상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고 있으며, 윤상 특유의 마이너한 감성으로 범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나, 곡의 완성도만큼은 최고에 이른다고 호평하였습니다.
2016년 러블리즈 미니 2집 기자 쇼케이스에서 윤상이 러블리즈와의 특별한 인연을 계속적으로 이어갈 것을 선언하였고, 러블리즈를 통하여 본인의 음악적 이상을 펼쳐나갈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다만 2017년에 새로 러블리즈와 작업한 정규 2집 타이틀곡 'WoW!'는 가사와 노래 구성이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안 좋게 말하면 마이너해서 팬들과 대중들의 호불호가 뚜렷이 갈렸습니다.
그럼에도, 후속으로 발표한 2017년 5월 2일 발표된 러블리즈의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지금, 우리의 동명 타이틀 곡 '지금, 우리'가 5월 16일 SBS MTV THE SHOW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작곡가로는 오랜만에 음악 방송 1위 곡을 배출하며 이러한 아쉬움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2017년 4월 말, 일렉트로닉 전문 레이블 '디지털리언 스튜디오'을 론칭했습니다.
5월 초 원피스의 신곡 ‘얼론’의 스템 파일을 공개하고 리믹스 컴피티션을 시작으로 매달 한 곡씩 일렉트로닉 장르의 유망한 신인을 소개하는 ‘디지털리언 나우’(Digitalian NOW)라는 레이블 음원 발매 프로젝트도 시작하는 등, 전문적이고 특화된 장르 레이블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2019년 1월 1일부터 사용 중인 KBS 뉴스 7과 KBS 뉴스 9의 시그널 음악 작곡을 맡았습니다.
또한 2021년 6월 7일부터 사용 중인 JTBC 뉴스룸의 시그널 음악 작곡도 하였습니다.

 

8. 음악 특징 및 평가

 

윤상 - Tango por Uno
강수지 - 잊으라니

 

9. 완벽주의

 

노래의 탄생 2화 中
노래의 탄생 4화 中

 

10. 뮤지션들의 뮤지션

 

공연의 神 이승환이, 음악의 神 윤상에게이승환뮤지션들이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중의 한 명으로, 굉장한 완벽주의자에요.
정말 한땀 한땀을 점묘법으로 완성해가는데, 그것들이 주는 완성도에 많은 사람들이 압도되는.
이적1990년 내가 데뷔 했을때, 윤상은 이미 22살의 나이로 이미 우리 가요계를 한번 뒤집고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난 동료이기 전에 그의 팬이었고, 그는 김현철, 정석원 등과 함께 나의 노래를 초라하게 느낄 정도로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음악을 했습니다.
나는 그를 동경했고 그와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가요계의 우아함의 상징.
- 윤종신세상에서 형을 제일 좋아하는 팬 대회를 연다면 내가 1등할 자신있거든요, 그러니깐 나를 위해서라도 음악 좀 더 많이 만들어줘요.
더 듣고 싶어.
더 듣고 싶으니깐.
실제로 제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 중에 하나거든요.
제가 입버릇처럼 얘기했던게, "내가 여자로 태어났었으면, 난 윤상을 사귀었을겁니다.
" 라고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절대 아니에요.
어깨 좁고 허리 긴 형!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요.
정말 아이돌 음악부터 시작해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적 자양분이 많은 선배이자 최고의 뮤지션.
- 유희열최고의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죠.
저는 윤상 씨 처음에 음원나올때, 그 테이프였어요.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어요.
일단 사운드가 기존에 쓰지 않았던 본인만의 독특한 사운드가 있고, 거기에 아날로그가 있어요.
예를 들어 첼로 소리가 들어간다거나, 동양적인 어떤 느낌이라던가.
김형석저희가 공부할 때, 미디 공부를 하면, 항상 윤상씨가 대표적인 예였고, 비슷하게 흉내 내려고 많이 따라했었던.
뮤지윤상 선배님을 존경했어요.
제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가 컴퓨터 음악으로 시작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노영심 선배님이랑 같이 방바닥에 앉아서 찍은 음반있죠? 그 집에서 사진찍은건데 그것조차 너무 멋있었고, 그리고 그걸 갖다가 흑백화면을 보며 한음한음 제가 카피를 하며 음악을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림.

 

11. 음반

 

윤상 음반 목록
정규 앨범
1집 윤상
(1990)
2집 Part I
(1992)
2집 Part II
(1993)
3집 Clichè
(2000)
4집 移徙 (이사)
(2002)
5집 There Is A Man...
(2003)
6집 그땐 몰랐던 일들
(2009)
 
EP
Renacimiento
(1996)
Insensible
(1998)
   
싱글
날 위로하려거든
(2014)
The Duets PART1
(2014)
그게 난 슬프다
(2016)
 
기타 음반
골든힛트
(1996)
Songbook: Play with Him!
(2008)
mo:tet
(2008)
Yoonsang 20th Anniversary
(2011)
참여 OST
파일럿 OST
(1993)
알바트로스 OST
(1996)
KBS 누들로드 OST
(2009)
아키에이지 OST
(2013)
보컬 참여 앨범
A Night In Seoul
(토이 4집)
(1999)
Fermata
(토이 5집)
(2001)
...그리고 김현철
김현철 8집
(2002)
Thank You
토이 6집
(2007)
Swallow
조원선 1집
(2009)
Last Fantasy
아이유 2집
(2012)
   
정규 앨범
1집 윤상
(1990)
2집 Part I
(1992)
2집 Part II
(1993)
3집 Clichè
(2000)
4집 移徙 (이사)
(2002)
5집 There Is A Man...
(2003)
6집 그땐 몰랐던 일들
(2009)
 
EP
Renacimiento
(1996)
Insensible
(1998)
   
싱글
날 위로하려거든
(2014)
The Duets PART1
(2014)
그게 난 슬프다
(2016)
 
기타 음반
골든힛트
(1996)
Songbook: Play with Him!
(2008)
mo:tet
(2008)
Yoonsang 20th Anniversary
(2011)
참여 OST
파일럿 OST
(1993)
알바트로스 OST
(1996)
KBS 누들로드 OST
(2009)
아키에이지 OST
(2013)
보컬 참여 앨범
A Night In Seoul
(토이 4집)
(1999)
Fermata
(토이 5집)
(2001)
...그리고 김현철
김현철 8집
(2002)
Thank You
토이 6집
(2007)
Swallow
조원선 1집
(2009)
Last Fantasy
아이유 2집
(2012)
   

 

12. 방송

 

방영 연도
방송사
방송명
비고
1996년
8월 28일
KBS2
가족오락관
게스트
2009년
1월 14일
MBC
라디오 스타
게스트
2월 3일
KBS2
상상플러스 시즌 2
7월 24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2010년
7월 9일, 7월 30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게스트
2011년
4월 11일, 12월 5일 ~ 12일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
게스트
7월 22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2011년 ~ 2012년
2011년 9월 9일 ~ 2012년 4월 20일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2012년
5월 24일
EBS
스페이스 공감
 
10월 5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게스트
11월 30일
SBS
GO Show
11월 25일 ~ 12월 9일
KBS2
1박 2일 시즌 2
2012년 ~ 2013년
2012년 9월 19일 ~ 2013년 3월 27일
/
뮤직 트라이앵글
진행
2013년
1월 4일 ~ 2월 1일
엠넷
보이스 키즈
심사위원
4월 26일, 7월 5일, 12월 20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게스트
2014년
8월 1일 ~ 9월 5일
tvN
꽃보다 청춘 페루편
 
10월 17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게스트
11월 10일
SBS
힐링캠프
12월 12일 ~ 12월 19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2015년
7월 4일 ~ 8월 22일
MBC
무한도전 -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7월 8일 ~ 8월 26일
채널CGV
무비 스토커
 
10월 30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게스트
11월 14일 ~ 11월 21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12월 3일
KBS2
해피투게더 3
게스트
2015년 ~ 2016년
2015년 7월 19일 ~ 2016년 1월 26일
tvN
집밥 백선생 시즌 1
 
2016년
2월 9일 ~ 11월 20일
SBS
판타스틱 듀오
 
8월 11일
엠넷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3
게스트
10월 5일 ~ 11월 23일
tvN
노래의 탄생
프로듀서
10월 14일 ~ 12월 9일
엠넷
판스틸러 - 국악의 역습
 
12월 23일 ~ 12월 30일
믹스 테이프
 
2016년 ~ 2017년
2016년 11월 11일 ~ 2017년 1월 27일
JTBC
팬텀싱어
프로듀서
2017년
8월 11일 ~ 11월 3일
JTBC
팬텀싱어 2
프로듀서
2018년
1월 17일 ~ 2018년 4월 18일
SBS
싱글 와이프 2
 
7월 18일
MBC
라디오 스타
게스트
2018년 ~ 2019년
2018년 11월 10일 ~ 2019년 1월 26일
채널A
보컬플레이
프로듀서
2019년
3월 1일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게스트
4월 12일 ~ 7월 12일
JTBC
슈퍼밴드
프로듀서
8월 31일
MBC
놀면 뭐하니?
 
10월 5일 ~ 11월 23일
tvN
노래의 탄생
프로듀서
9월 20일 ~ 11월 8일
노래에 반하다
 
2020년
3월 6일
엠넷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7
게스트
6월 5일
KBS1
다큐멘터리 3일 실패해도 괜찮아 - 목포 괜찮아마을 72시간
내레이션
4월 10일 ~ 7월 3일
JTBC
팬텀싱어 3
프로듀서
7월 15일
MBC every1
대한외국인
게스트
9월 27일
SBS
선미네 비디오가게
2021년
5월 26일
tvN
곽씨네 LP바
게스트
6월 21일 ~ 10월 4일
JTBC
슈퍼밴드2
프로듀서
2022년
6월 21일
JTBC
뉴페스타
게스트
7월 17일
MBC
출발! 비디오 여행
나레이션
2018년 ~ 현재
2018년 9월 30일 ~ 현재
MBC
복면가왕
고정 패널

 

13.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2011년 9월~12년 4월 방영된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2기에서 심사위원으로 출연하였습니다.
평소의 조근조근한 말투로 감정적으로 화를 내진 않지만 무표정하고 냉정하게 짚을 것은 죄다 짚어 주는 편이라 독설 멘토로 위상을 날립니다.
누군가가 말하길 다른 독설들은 그냥 기분 나쁘고 말거나 개인 취향으로 넘길 수 있지만, 윤상의 악평 은 엑스레이로 스캔당하고 벌거벗겨져서 밑천이 탈탈 털려버리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너무한 것 아니냐, 윤상이 저럴 줄 몰랐다, 반전이다 하는 말들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윤상을 알아온 사람들에게는 크게 놀랄 것 없습니다.
보통 때는 소심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완벽주의자 성향 때문에 본인 작품도 치열하고 진지하고 엄격하게 대하는 사람인데다가 작곡/제작 경력만 쳐도 20년이 넘어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입니다.
함께 오래 활동했던 강수지는, 윤상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는 일은 없지만 녹음시 정말 깐깐해서 같이 작업할 때는 항상 긴장했다고 합니다.
작업하던 여자 가수들 여럿 울렸으며 게다가 딱히 평 중에 억지춘향이거나 틀린 말을 한 것도 없습니다.
덕분에 방송 후 멘티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보니 멘티들이 다들 각잡고 초긴장 상태로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 이승환, 윤하와 같이 고현정이 진행하는 Go Show에 출연했습니다.
여기에서 털어놓길, "악평을 한 참가자의 이유가 된 태도 등은 방송에 다 나오지 않고 자기가 악평하는 것만 나와서 자기만 나쁜 사람 되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집에서 간식 먹으면서 방송 보다가 목에 걸려서 쿨럭쿨럭.
그리고 같이 출연하는 이승환에게 전화해서 2시간을 투덜거렸다고.
근데 녹화가 좀 길어지면 피곤해져서 배로 까칠해지는 경향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같은 오디션 류 프로그램인 팬텀싱어에서는 그다지 독설가 포지션이 아닙니다.
독설은 뮤지컬 감독인 김문정과 오디션계의 베테랑(?)인 윤종신 쪽이 더 많이 날리는 편.
오히려 프로듀서들 중에서도 마이클 리와 더불어 심사기준이 독특하고 소수의견을 많이 낸다는 점이 특징이기는 하지만, 장점과 단점을 굉장히 균형감 있게 조곤조곤 짚어주는 편이라 밑천이 털리는 경험을 할 정도는 아닙니다.
물론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이 신예 뮤지컬 배우나 전문 성악가, 대학생들 중에서도 성악과나 실용음악과 등 음악 내공이 대중 오디션보다 높은 참가자들이 대거 참가하기에 윤상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정말로 위대한 탄생이 악마의 편집을 해댄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인은 그 당시엔 방송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서 필터링 자체를 생각에 두지 않고 다녔다고 합니다.
팬텀싱어는 악마의 편집을 잘 안하는 편입니다.

 

14. 라디오 DJ

 

1992년 즈음, '밤의 디스크쇼'의 DJ로 활동할때의 윤상라디오 DJ 경력도 풍부합니다.
1991년 MBC FM(현 MBC FM4U)의 "윤상의 밤의 디스크쇼" 진행을 맡았고, 이 당시 MBC FM은 배철수의 음악캠프-이승연/고소영의 FM데이트-윤상의 밤의 디스크쇼라는 괴물 라인업을 선보이면서 1990~1997년까지 청취율 깡패로 군림했습니다.
디스크쇼는 이후 김현철이 이어받아 한동안 진행했고, 이후 FM데이트와 디스크쇼가 오후 9시→8시, 11시→10시로 당겨지면 FM 음악도시가 신설됩니다.
후술하듯 윤상은 FM 음악도시와도 인연이 깊다.
이후 2000년부터 2002년까지 MBC FM4U에서 오전 9시~11시에 “윤상의 음악살롱” 을 진행하며 윤마담이란 별명으로 불리곤 했습니다.
2010년 4월 19일부터 2013년 4월 30일까지 약 3년 동안 KBS 제2FM에서 오전 11시~12시에 '윤상의 팝스팝스' 진행을 했습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보다 록 중심이라면 윤상은 좀 더 소녀스러운 올드팝이나 월드 뮤직을 곧잘 틀어줬습니다.
이외에도 유희열이 진행하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성시경의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 등에 게스트로 꽤 많이 오곤 했습니다.
특히 성시경은 유희열과 함께 그를 자주 초대했었습니다.
특히 음악도시의 고정게스트 중 한명이었던 이준오는 성시경과 더불어 윤상 빠심을 인증한 바 있습니다.
라디오천국의 고정게스트였던 옥상달빛의 김윤주 역시 윤상에 대한 오랜 존경심과 빠심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외에도 2013년 12월 10일에는 두시탈출 컬투쇼에도 출연했습니다.
이 때 윤상은 초창기 음악을 하고 싶어 김현식에게 찾아갔던 일화라던가, 부인 심혜진과의 일화 등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윤상 심혜진" 등이 인터넷 검색엔진에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그 뒤에, 음반 작업을 위해 버벌진트에게 자리를 넘겼다가 최다니엘의 진행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은 폐지.
2021년 7월 5일부터 2022년 12월 29일까지는 네이버 나우에서 오디오 쇼 '너에게 음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는 윤상이 8년만에 다시 진행을 맡은 음악 프로그램으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바람.

 

15. 광고

 

 

16. 서적

 

 

17. 홍보대사

 

 

18. 음악감독

 

 

19. 가족 관계

 

 

20. 인간 관계

 

 

21. 이야기들

 

external/pds.joi... 윤상 베이스
그의 베이스에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해골 마크'가 붙어있습니다.

 

22. 수상 경력

 

 

23. 표절 논란

 

1989년 윤상이 작곡한 변진섭의 로라
1985년 발매된 사이토 유키의 정열

 

24. 병역 기피 논란

 

표절 논란과 더불어 그의 또다른 흑역사 중 하나.
1987년 신검을 받고 1급 판정을 받았는데,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 연기를 해 오다가 1993년 5월에 입대 영장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이 무렵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해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것.
이에 따라 이민으로 처리되었는데도, 계속 국내 활동을 하는 바람에 추적을 받았습니다.
당시 DJ로 진행 중이었던 '디스크 쇼'에서 하차하고 잠적 후 도피하기도 했지만, 결국 국적을 포기하고 그 해 12월에 현역으로 입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1993년 10월 윤상을 병역기피 혐의로 수배했으나 12월 말 육군보충대에 입대한 사실을 확인해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습니다.
(관련 기사) 그리고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 회복을 했습니다.
이런 과거 때문에 "입대 전 서류까지 위조하면서 병역기피를 시도한 인물을 굳이 2018년 평양 공연의 단장으로 임명했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

 

25. 방자경의 종북몰이

 

2018년 4월에 대한민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진행하기 위해, 3월에 공동경비구역(JSA·판문점) 북한 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실무 접촉을 했습니다.
이때 윤상은 대한민국 예술단 음악 감독 자격으로 박형일 통일부 국장, 박진원 청와대 통일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함께 실무 접촉 회담에 참석했습니다.
그러자 3월 18일 방자경 나라사랑바른학부모실천모임 대표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문보궐정권은 반 대한민국 세력들과 한편 먹는데 남북실무접촉 남수석대표로 윤상씨라면 김일성 찬양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간첩 윤이상, 5.
18광주폭동 핵심으로 보상금 받고 월북한 대동고출신 윤기권,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든 5.
18영화의 주인공 윤상원 이들 중 누구와 가까운 집안입니까?"라는 글을 작성하였고, 윤상을 종북 이미지와 연관지으려 시도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손석희가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윤상의 본명은 제일 위의 표에도 적혀 있듯, '이윤상'으로 윤씨가 아닙니다.
그가 윤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여담 항목에 따로 후술하겠다만,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는 정보를 조사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까내리기를 시전한 것.
그리고 애초에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는 김종률로 윤이상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에 방자경은 19일 "주적 북한에 가서 공연하겠다는 윤상 씨에 대해 올린 글 중 정정할 부분이 있습니다"라면서 "윤상 씨는 본명이 윤상이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19일과 20일 2번에 걸쳐 SNS에 "윤상 씨를 종북으로 글 쓴 사람처럼 허위기사들로 도배됐다"라고 해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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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할 윤 서로 상 배우.
1994년 HBS 현대방송(현 영화전문채널 OCN Movie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습니다.
SM 엔터테인먼트 차기 보이그룹으로 데뷔 예정입니다.
탁재훈과 중/고등학교 동창이며, 학교 다닐 적에는 서로 몰랐다고 합니다.
현재는 도예학과입니다.
윤상이 고등학교 때 결성한 밴드입니다.
1박 2일에서 언급.
박경림이 라디오에 나온 러블리즈 멤버에게 윤상이 어떤 존재냐고 물으면서, 오빠냐 아저씨냐라고 물었더니 '아빠 같은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윤상이 굉장히 날카롭고 이지적인 인상인 데다가 실제로 성격도 그렇지만 러블리즈와 함께 있으면 정말 아빠처럼 얼빠져서 헤헤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이례적으로 걸그룹의 전 앨범을 프로듀싱한 경우로는 러블리즈가 유일합니다.
혼자 집에서 음주하는 일이 많아 정원영, 유희열 등이 윤상을 지칭하며 놀리는 별명.
라디오 “윤상의 음악살롱”을 진행하며 생긴 별명입니다.
순록+단장.
펭수가 지어준 별명입니다.
동물 중에 순록과 닮았는데 크리스마스 캐롤 프로젝트에서 프로듀서 역, 즉 (동물)음악대의 단장이라 칭하며 생긴 별명.
뒷태만 보면 180cm은 가볍게 넘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허리가 길어 생긴 별명.
사실 이것도 유희열, 윤종신, 이적 등이 윤상을 놀릴 때 쓰는 별명입니다.
사실 이 시절 외동은 매우 드물었으며 외동은 1980년대 중후반은 가야 흔해졌습니다.
2부.
야간고 출신 아닙니다.
현재도 아주 간혹 있지만 그 당시는 종종 존재했었습니다.
음악 활동하느라 그랬는지 수업시간에 그렇게 잠을 자 별명이 '잠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스 장기호와 키보드 박성식이 팀을 탈퇴하고 사랑과 평화에 영입이 되면서 베이시스트 자리가 공석이었습니다.
집안에서 장남인 장기호와 박성식은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했던지라 사랑과 평화에서의 제의를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둘은 훗날 퓨전재즈 밴드 빛과 소금을 결성합니다.
당시 김완선이 집으로 초대해 식사로 크게 한상을 차려주어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슈퍼밴드 심사 중 밝힌 바로는 베이시스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70% 정도는 등떠밀려서 되고 자신도 그랬다고 합니다.
왼쪽부터 1990년 발매된 정규 1집 윤상 커버, 1992년 발매된 정규 2집 Part I 후면 커버, 1993년 발매된 정규 2집 Part II 커버입니다.
사고 싶었던 신디사이저가 당시 800만 원이었는데, 앨범 당 3000만 원의 계약금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윤상이라면 상상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일밤에 출연해 이에 김을 끼운다던지 쌍코피 분장을 하고 헤헤 웃는 등 개콘에서나 볼 수 있는 몸개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둘 다 명반인데 파트1집은 대중적인 면이 강했고 파트2는 실험적인 면모가 강했기 때문.
사실 실험적이라면 1집부터도 마찬가지지만 유달리 2집의 Part2는 그런 면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본격적인 행보는 줄곧 계속되었습니다.
더구나 <이별없던 세상>이 반응이 올 무렵 입대를 해서, 판매량이 탄력을 받지 못한 점도 있습니다.
이후 슬기로운 음악 대박과에서 밝히는데 실제 판매량은 45만장이었습니다.
소속사에서 판매량을 속였고 그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음악은 실패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3집 Cliche 앨범에서 신스베이스는 전부 이 악기로 했을 정도.
본인의 책인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에게'에서도 마지막 후기에 따로 자세히 언급했습니다.
이후 인터뷰에서 미니무그 자체는 데뷔 후 바로 구매했지만 MIDI 컨버터가 없어 레코딩에 사용하지 못하다가 3집 작업할 즈음에 MIDI 컨버터를 구해서 레코딩에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박창학이 구해준 물건은 사실 MIDI 컨버터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이는 윤상 본인의 희망일 뿐, 윤상은 실제로 표절 경력이 있습니다.
변진섭-로라가 사이토 유키-정열을 표절한 곡이라는 사실은 절대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담으로 윤상이 군대에서 전역한 뒤 야심차게 프로듀스한 알로라는 혼성 그룹이 있는데 이것 또한 망했습니다.
유희열은 이 앨범과 프로젝트에 관해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이라 말하기도.
후에 알로의 타이틀곡인 잠자는 숲속의 왕자는 아이유가 리메이크했고 앨범수록곡 중 하나인 랄랄라는 소녀시대가 윤상의 송북 앨범에 참여했을 때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윤종신은 보통 결혼하면 찌는데 왜 이렇게 마른 건지 모르겠다 말했었는데 당시 유희열의 말에 따르면 학업과 함께 일도 병행해야 했으니 몸이 남아나질 않는 게 당연했다고 합니다.
DMB 라디오를 한다고 했을 때 봄여름가을겨울, 유희열을 비롯한 선후배 동료 모두 희한해 했다고 합니다.
저런 걸 할 사람이 아닌데 해서 사람이 달라졌나 생각이 들었다고.
이전 앨범을 발매했던 회사가 IMF로 음반 사업을 못 하게 되자 선급금을 반환할 것을 요구하여 급전이 필요하기도 한 상황이었고, 윤상의 음악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고 유학 중에 음악 작업을 해도 괜찮다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승낙한 것.
이외에 공연기획자 출신인 탁현민 청와대 비서관이 서현 측에 부탁해 무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북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참한 인상을 갖춘 연예인이라는 이유였다고.
나머지 4곡인 남보다 못한 사이, 그녀는 바람둥이야, Delight, 너만 없다는 각각 베이비소울, 유지애, JIN이 러블리즈로 데뷔하기 전에 발표했던 솔로곡입니다.
러블리즈가 들어오자 "인사성이 참 바른 아이들"이라고 칭찬부터 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Ah-Choo'는 러블리즈에게는 역대급 음원 성적을 가져다주었고, 윤상 본인에게도 근래 들어 가장 뛰어난 음원 성적을 거둔 곡입니다.
직접 사회를 맡아 쇼케이스를 진행하였습니다.
데뷔 앨범부터 함께 준비해서 연습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왔으며 러블리즈 멤버들의 별명을 모두 알 정도로 애정이 많고 방송에서 언급을 자주 할 정도로 친분이 깊어졌습니다.
현재의 아이돌 음악과는 다르게 마이너한 감성이지만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러블리즈란 아티스트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표현할 것으로 쇼케이스 초청 기자들 앞에서 포부를 밝혔습니다.
뒤이어 러블리즈를 (파트너를 넘어) 자신의 신스팝을 구현해줄 최적의 오브젝트라고 극찬하기까지 했습니다.
여기서도 직접 쇼케이스의 사회를 맡음으로서 변함없는 관계 인증.
일부 팬들은 다른 수록곡인 'Cameo'가 타이틀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1위를 했던 곡은 아이유의 나만 몰랐던 이야기로, 그 '지금, 우리'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앞선 곡 tango por uno에 주 멜로디를 만들어 올린 곡입니다.
Last Fantasy 앨범의 Thanks to에 보면 상아빠라고 부르는 게 나옵니다.
유재석의 드럼비트를 하나의 음악으로 만드는 과정을 찍는 놀면 뭐하니? - 유플래쉬 편에서, 드럼을 처음 쳐봤기에 다소 엉망이였던 유재석의 필인을 살려냈지만, 그래도 윤상이 평소 본인의 성격상이면 분명 넘어가지 못할 부분을 "이정도는 용서해 줄 수 있지 않냐.
"며 어물쩍 넘기려하자, 이를 들은 유희열의 대꾸.
이에 윤상은 "야, 이게 내꺼냐?"라고 답했습니다.
2012년 윤상의 단독 콘서트에 이승환이 보낸 화환의 멘트입니다.
2012 월간 윤종신 10월호 中 8회까지만 출연하다 중도하차하였습니다.
대표적인 독설로 "발전 가능성이 제로다.
", "준비가 전혀 안된 것 같습니다.
나가라.
" 하드함 그 이상의 녹음 과정 안에서 힘들어하거나 귀찮아할때면 딱 한 마디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지금 녹음하는 이 노래 평생 니 이름 적힐 니 노래야.
" 대중음악 및 크로스오버 계열에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윤상답게 가창력의 측면이든 무대 구성의 측면이든 원곡에 대한 이해와 그 해석의 참신성을 매우 중시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진 속 배경은 당시 윤상의 개인 스튜디오 1대 신해철, 2대 유희열, 3대 이소라, 4대 성시경 순입니다.
말이 노총각이지 결혼 당시 윤상은 35세로 요즘 기준으로는 그다지 혼기가 늦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서른을 넘기면 무조건 앞에 '노'자가 붙던 시절이라.
다만 1Piece 멤버 개인 차원에서의 작사·작곡이나 프로듀싱은 이뤄졌습니다.
Davink가 치유의 수록곡인 'Temptation'을 작사·작곡했고, 스페이스 카우보이가 SANCTUARY를 프로듀싱했습니다.
기사제목발췌: '인기가요' 러블리즈 케이·미주 "윤상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이돌 그룹에서의 메인 보컬.
걸그룹의 리드보컬.
실제로 류수정은 러블리즈에서 리드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2011년 위대한 탄생 2 준준결승, 멘티 전은진과의 합동 공연에서 그는 같은 베이스를 들고 왔지만, 그때는 베이스에 이 마크가 붙어있지 않은 것을 보아 적어도 2011년 이후에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코피 장면은 3:55)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의 피해자 이윤상은 1980년에 중학교 1학년으로 1967년생입니다.
윤상은 1968년생.
이벼리가 참가했던 시점에선 팬텀싱어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미 팬텀싱어 출신만 못 맞추는 걸로 소문났던 모양.
김현철이 비대면 남친으로 참가한 배두훈의 정체를 정확하게 추리했으나 오히려 윤상은 저런 개인기 할 사람이 아니라며 부정했습니다.
배두훈이 참가자들 중에 오빠는 풍각쟁이처럼 어깨 넓고 키 큰 참가자가 딱 한 명 있다고 했지만 윤상은 저런 실루엣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밝힌 바로는 나팔바지 때문이었다고.
(그럴 만도 한 것이 팬텀싱어는 정장 차림으로 경연하는 경우가 잦다.
) 오히려 전람회 시절 김동률의 "유서" 쪽이 더 비슷합니다.
다만 국적법상 아르헨티나는 국적 포기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말로 국적 포기가 되었는지는 불명.
당시 트위터 게시글 그대로 작성.
띄어쓰기를 안 하는 등 문법적 오류가 있음은 SNS 게시글 특성상 그럴 수도 있으므로 차치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를 '문보궐정권'으로 칭하거나 5.
18광주 민주화운동을 '5.
18광주폭동'으로 칭하는 등 비하 표현과 왜곡 발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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