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기자맨의 최근 생활뉴우스
윤상
윤상
Yoonsang |
|
본명
|
이윤상 (李潤相, Lee Yoonsang)
|
출생
|
1968년 5월 11일 (55세)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불광동
(現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
|
국적
|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
180cm, 65kg, O형
|
가족
|
배우자 심혜진(1975년생, 2002년 결혼 ~ 현재)
장남 이찬영(2003년 5월 2일생) 차남 이준영(2009년 6월 30일생) |
학력
|
예일초등학교 (졸업)
연서중학교 (졸업) 충암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산업대학 (요업공예학 / 학사) 버클리 음악대학 (뮤직신서시스학 / 학사) 뉴욕 대학교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 / 석사)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
소속 그룹
|
페이퍼 모드, 노땐스, 1Piece
|
데뷔
|
1990년 11월 30일, 정규 1집 '윤상'
|
별명
|
뮤지션들의 뮤지션, 발라드의 조상, 러블리즈의 아버지, 독거노인, 윤마담, 록단장, 허리 긴 형
|
1. 소개
대한민국의 가수, 음악가, 작곡가, 베이시스트.
1988년 무렵부터 작곡가 및 세션 베이시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그 해 발매된 가수 김현식의 정규 4집 앨범 수록곡인 '여름밤의 꿈'을 작곡하여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이후 2년 뒤인 1990년에 본인의 정규 1집 '윤상'을 발매하며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
발라드 가수로 활동할 때는 본인 특유의 감성적인 곡 스타일과 더불어 잘생긴 외모, 고운 미성과 함께 수많은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며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와 같은 여러 히트곡도 작곡하면서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로도 탄탄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실험적인 면모가 강해지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선구자 격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0년대엔 일렉트로닉부터 아이돌 음악까지 섭렵하고 있습니다.
김현철, 손무현, 유정연 등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을 80년대까지의 트로트 위주의 전통가요 시대에서 90년대 이후의 현대음악 시대로 바꾸는데 상당한 공로를 한 뮤지션 중 하나입니다.
1988년 무렵부터 작곡가 및 세션 베이시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그 해 발매된 가수 김현식의 정규 4집 앨범 수록곡인 '여름밤의 꿈'을 작곡하여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이후 2년 뒤인 1990년에 본인의 정규 1집 '윤상'을 발매하며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
발라드 가수로 활동할 때는 본인 특유의 감성적인 곡 스타일과 더불어 잘생긴 외모, 고운 미성과 함께 수많은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며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와 같은 여러 히트곡도 작곡하면서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로도 탄탄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실험적인 면모가 강해지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선구자 격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0년대엔 일렉트로닉부터 아이돌 음악까지 섭렵하고 있습니다.
김현철, 손무현, 유정연 등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을 80년대까지의 트로트 위주의 전통가요 시대에서 90년대 이후의 현대음악 시대로 바꾸는데 상당한 공로를 한 뮤지션 중 하나입니다.
2. 데뷔 이전
1989년 김완선의 백밴드시절 연주 모습
|
1989년 이승철 세션 시절 연주 모습
|
3. 데뷔
external/blogimg... | external/img.man... | external/pds25.e... |
인기 아이돌 윤상.jpg
|
4. 소속사와의 갈등과 군입대
1집의 엄청난 성공 후, 소속사 사이에 갈등이 꽤 심했습니다.
1집의 대중적인 성공 후, 소속사(와 광수 사장)는 계속해서 윤상을 아이돌+대중가요 노선으로 끌고 가려 했으나 윤상은 이제 번 돈으로 장비도 다 구비했으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해 보고 싶다며 이견을 보였습니다.
신인 가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1등을 받는 게 뮤지션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이 출연을 거부해 괘씸죄로 방송 금지를 먹기도 했고,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와중에도 "난 스튜디오 뮤지션인데 왜 이런 걸 하고 있나…" 하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는 또 이런 생각이 바뀌어서 예능에 고정출연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인터뷰에서도 소녀 팬들을 몰고 다니던 시기가 그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다른 일 할 거에요.
저는 연주자·작곡자·편곡자로서 가수 주변에 머무르는 게 좋은데, 얼떨결에 인기 가수가 됐죠.
낮엔 아이돌 스타처럼 살고 밤엔 곡 쓰는 뮤지션으로 돌아오고….
제일 먼저 놓아버리고 싶었던 건 가수였어요.
” 라고 대답했습니다.
덕분에 2집은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1년 차이로 part 1, part 2라는 괴상한 형태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파트 1(100만 장)은 1집(90만장)처럼 인기가 좋았지만, 파트 2는 30만 장으로 상대적으로 부진했습니다.
거기에 갑자기 가수 은퇴를 발표했다가 번복하는 등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후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를 계속해서 연기를 하던 윤상 앞으로 1993년 5월에 입대 영장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그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며 병역 기피 논란으로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결국 1993년 12월 현역으로 입대하며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자세한 건 아래서 후술.
그에게 군입대로 인한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원하는 악기를 맘대로 사지 못했다는 것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늘 절친인 작사가 박창학이 수고했어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현재까지도 윤상이 그렇게 아끼는 미니무그.
또 군복무 당시 알바트로스의 음악 감독을 맡아 OST를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1집의 대중적인 성공 후, 소속사(와 광수 사장)는 계속해서 윤상을 아이돌+대중가요 노선으로 끌고 가려 했으나 윤상은 이제 번 돈으로 장비도 다 구비했으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해 보고 싶다며 이견을 보였습니다.
신인 가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1등을 받는 게 뮤지션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이 출연을 거부해 괘씸죄로 방송 금지를 먹기도 했고,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와중에도 "난 스튜디오 뮤지션인데 왜 이런 걸 하고 있나…" 하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는 또 이런 생각이 바뀌어서 예능에 고정출연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인터뷰에서도 소녀 팬들을 몰고 다니던 시기가 그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때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다른 일 할 거에요.
저는 연주자·작곡자·편곡자로서 가수 주변에 머무르는 게 좋은데, 얼떨결에 인기 가수가 됐죠.
낮엔 아이돌 스타처럼 살고 밤엔 곡 쓰는 뮤지션으로 돌아오고….
제일 먼저 놓아버리고 싶었던 건 가수였어요.
” 라고 대답했습니다.
덕분에 2집은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1년 차이로 part 1, part 2라는 괴상한 형태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파트 1(100만 장)은 1집(90만장)처럼 인기가 좋았지만, 파트 2는 30만 장으로 상대적으로 부진했습니다.
거기에 갑자기 가수 은퇴를 발표했다가 번복하는 등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후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를 계속해서 연기를 하던 윤상 앞으로 1993년 5월에 입대 영장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그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며 병역 기피 논란으로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결국 1993년 12월 현역으로 입대하며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자세한 건 아래서 후술.
그에게 군입대로 인한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원하는 악기를 맘대로 사지 못했다는 것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늘 절친인 작사가 박창학이 수고했어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현재까지도 윤상이 그렇게 아끼는 미니무그.
또 군복무 당시 알바트로스의 음악 감독을 맡아 OST를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5. 전역 후
전역한 후 1996년 복귀작으로 리메이크 앨범인 Renacimiento(레나시미엔토.
스페인어로 르네상스)를 발표했습니다.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윤상이 불렀던 신곡은 딸랑 2곡(벽, 배반)뿐이고, 2집 파트1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를 샘플링해온 것으로 보이는 1분 짜리 연주곡인 Eco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6개 트랙이 자신이 불렀거나 작곡했던 예전 히트곡들을 이탈리아/프렌치 팝/남미 음악 풍으로 재편곡한 후 해당 국가 보컬들에게 그 나라의 국어로 번안한 가사로 부르게 한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그때까지 계속 윤상에게 따라다니던 일본 음악 표절설에 대한 항변격으로 낸 것입니다.
위의 작업을 통해 자기는 일본 음악이 아니라 월드뮤직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윤상은 월드뮤직, 특히 남아메리카 쪽 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김형석, 성시경이 “윤상은 툭하면 ‘야 이거 이탈리아의 무명 뮤지션 b-side의 곡이랑 진행이 비슷한데?”라고 한다며 투덜대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음악이 외국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 나라 언어로 가사를 붙이면 어떨 지 궁금했던 것도 이 앨범의 기획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판매량은 10만 장 남짓에 그쳤습니다.
같은 해에는 신해철과 함께 프로젝트 팀 노땐스를 결성하고, <골든 힛트>라는 제목의 앨범을 냅니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테크노/전자음악 앨범인데, 이후 상당한 희귀 음반이 되었습니다.
훗날 S.
E.
S가 리메이크한 노래 <달리기>도 이 앨범에 실려있습니다.
1998년에는 지금까지 윤상의 최고 역작이라 불리는 싱글 앨범 "Insensible"을 발표했으며, 이승환이 프로듀싱했습니다.
2000년 6월에는 윤상의 정규 앨범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앨범이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81위에 랭크된 앨범인 3집 'Cliché'를 발표합니다.
데뷔부터 제대까지, 초반에는 외국 곡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곡들과 오빠부대로 시작했으나 이런 일련의 작업들로 오빠부대 아이돌 연예인에서 본좌 뮤지션으로 정체성이 확립됩니다.
그러면서 대중적 인기는 멀어져갔습니다.
스페인어로 르네상스)를 발표했습니다.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윤상이 불렀던 신곡은 딸랑 2곡(벽, 배반)뿐이고, 2집 파트1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를 샘플링해온 것으로 보이는 1분 짜리 연주곡인 Eco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6개 트랙이 자신이 불렀거나 작곡했던 예전 히트곡들을 이탈리아/프렌치 팝/남미 음악 풍으로 재편곡한 후 해당 국가 보컬들에게 그 나라의 국어로 번안한 가사로 부르게 한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그때까지 계속 윤상에게 따라다니던 일본 음악 표절설에 대한 항변격으로 낸 것입니다.
위의 작업을 통해 자기는 일본 음악이 아니라 월드뮤직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윤상은 월드뮤직, 특히 남아메리카 쪽 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김형석, 성시경이 “윤상은 툭하면 ‘야 이거 이탈리아의 무명 뮤지션 b-side의 곡이랑 진행이 비슷한데?”라고 한다며 투덜대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음악이 외국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 나라 언어로 가사를 붙이면 어떨 지 궁금했던 것도 이 앨범의 기획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판매량은 10만 장 남짓에 그쳤습니다.
같은 해에는 신해철과 함께 프로젝트 팀 노땐스를 결성하고, <골든 힛트>라는 제목의 앨범을 냅니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테크노/전자음악 앨범인데, 이후 상당한 희귀 음반이 되었습니다.
훗날 S.
E.
S가 리메이크한 노래 <달리기>도 이 앨범에 실려있습니다.
1998년에는 지금까지 윤상의 최고 역작이라 불리는 싱글 앨범 "Insensible"을 발표했으며, 이승환이 프로듀싱했습니다.
2000년 6월에는 윤상의 정규 앨범 중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앨범이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81위에 랭크된 앨범인 3집 'Cliché'를 발표합니다.
데뷔부터 제대까지, 초반에는 외국 곡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곡들과 오빠부대로 시작했으나 이런 일련의 작업들로 오빠부대 아이돌 연예인에서 본좌 뮤지션으로 정체성이 확립됩니다.
그러면서 대중적 인기는 멀어져갔습니다.
6. 아내와의 동반 유학
2003년 즈음해서 미국 보스턴의 명문 버클리 음악대학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학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유학을 갔습니다.
당시 그냥 프로듀싱이나 작곡을 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었는데, 신디사이저나 제작과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 알고 싶었지만 국내에서 정보를 구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기도 하고, 더 이상 음악 작업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유학을 떠났다고 합니다.
후에 밝히기를 유학을 결정할 당시에 "어렸을 적 '나는 나중에 이런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그 꿈을 이루어 버려서 더이상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 데뷔해 성공, 남들이 받들어 주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어린 사람들과, 그것도 자기가 알아서 하는 분위기의 미국에서 여러 모로 생각도 많이 바뀌고 배운 것도 많은 듯합니다.
그냥 놀러 간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왔습니다.
때문에 유학을 마친 후 피부고 뭐고 더 이상 예전의 연예인스러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근데 당시 한 TV 프로그램에 윤상을 만나러 갔던 나경은을 포함한 여자 아나운서들은 여전히 멋있다고 말하기도.
암튼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했는데, 말을 바꾼 건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디션을 봐야 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베이스 연습을 다시 했으나 탈락.
나중엔 그래도 밤새가면서 공부해서 성적 장학금을 좀 받았다 합니다.
이때 부인과의 일화가 있습니다.
부인 심혜진 씨가 필수 교양과목 등 본인 전문분야가 아닌 쪽은 윤상이 맨날 “여보 숙제 해줘” 라고 해서 네 숙제를 왜 내가 하냐며 성질을 내면서 해 줬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물론 윤상은 그때마다 “네가 우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유학 가자고 했잖아.
” 설득해서 결국 해줬으며 유학 중에 잠깐 나왔던 모 방송에서는 핼쑥해져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원래는 학부만 마치고 올 예정이었지만 공부에 불이 붙어 졸업한 후 다시 NYU 대학원 뮤직 테크놀로지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작곡 편곡이 아닌 사운드 메이킹을 배워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멜로디가 아니라 소리 구성요소들의 디자인 같은 것.
유학 계획도 중간에 바뀌고, 아이도 둘이나 태어나고해서 학비와 생활비 관계로 공부하랴 일하랴 엄청 빡세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는 누들로드의 OST와 DMB 방송을 잠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누들로드는 본인이 영상음악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승낙한 이유도 있습니다.
유학 중에 잠깐 국내로 들어와서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게스트로 나와서 말하기를 "유희열 씨도 가정에 충실하고 싶으면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대한민국에서는 나가면 '와~ 가수다', '와~ 연예인이다' 하면서 이리 오세요, 저리 가보세요 하지? 여긴 그런 거 없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거야.
"라고 유학생활의 소고를 밝힌 바가 있습니다.
유학 전 SM엔터테인먼트으로 이적했는데, 당시 SM의 이미지는 강렬한 춤과 용모로 승부하는 댄스가수를 양성하는 곳이었던 고로 충격과 공포를 불러왔습니다.
'윤상이 이제 자기 음악을 못 하는 거냐'며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다고.
본인은 그런 건 모르고 그냥 계약 조건이 제일 좋아서 승낙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작권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10억 정도의 계약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계약은 매니지먼트 계약이 아니라 정규앨범 4~5집 발매, 프로젝트 앨범 1장 등 일 관련 계약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윤상은 SM의 자본력과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고, SM은 이미지 쇄신 + 윤상의 프로듀싱과 곡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꽤 좋은 계약이었던 셈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윈윈한 계약이었던 것.
덕분에 윤상은 아직도 SM을 좋게 평가하고 있으며, 보아와 동방신기 등의 소속 가수들과 꾸준히 작업 중입니다.
우연하게도 오랜 후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평양 공연에는 SM의 Red Velvet이 함께했습니다.
.
당시 그냥 프로듀싱이나 작곡을 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었는데, 신디사이저나 제작과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 알고 싶었지만 국내에서 정보를 구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기도 하고, 더 이상 음악 작업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유학을 떠났다고 합니다.
후에 밝히기를 유학을 결정할 당시에 "어렸을 적 '나는 나중에 이런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그 꿈을 이루어 버려서 더이상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 데뷔해 성공, 남들이 받들어 주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어린 사람들과, 그것도 자기가 알아서 하는 분위기의 미국에서 여러 모로 생각도 많이 바뀌고 배운 것도 많은 듯합니다.
그냥 놀러 간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왔습니다.
때문에 유학을 마친 후 피부고 뭐고 더 이상 예전의 연예인스러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근데 당시 한 TV 프로그램에 윤상을 만나러 갔던 나경은을 포함한 여자 아나운서들은 여전히 멋있다고 말하기도.
암튼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했는데, 말을 바꾼 건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디션을 봐야 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베이스 연습을 다시 했으나 탈락.
나중엔 그래도 밤새가면서 공부해서 성적 장학금을 좀 받았다 합니다.
이때 부인과의 일화가 있습니다.
부인 심혜진 씨가 필수 교양과목 등 본인 전문분야가 아닌 쪽은 윤상이 맨날 “여보 숙제 해줘” 라고 해서 네 숙제를 왜 내가 하냐며 성질을 내면서 해 줬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물론 윤상은 그때마다 “네가 우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유학 가자고 했잖아.
” 설득해서 결국 해줬으며 유학 중에 잠깐 나왔던 모 방송에서는 핼쑥해져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원래는 학부만 마치고 올 예정이었지만 공부에 불이 붙어 졸업한 후 다시 NYU 대학원 뮤직 테크놀로지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작곡 편곡이 아닌 사운드 메이킹을 배워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멜로디가 아니라 소리 구성요소들의 디자인 같은 것.
유학 계획도 중간에 바뀌고, 아이도 둘이나 태어나고해서 학비와 생활비 관계로 공부하랴 일하랴 엄청 빡세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는 누들로드의 OST와 DMB 방송을 잠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누들로드는 본인이 영상음악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승낙한 이유도 있습니다.
유학 중에 잠깐 국내로 들어와서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게스트로 나와서 말하기를 "유희열 씨도 가정에 충실하고 싶으면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대한민국에서는 나가면 '와~ 가수다', '와~ 연예인이다' 하면서 이리 오세요, 저리 가보세요 하지? 여긴 그런 거 없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거야.
"라고 유학생활의 소고를 밝힌 바가 있습니다.
유학 전 SM엔터테인먼트으로 이적했는데, 당시 SM의 이미지는 강렬한 춤과 용모로 승부하는 댄스가수를 양성하는 곳이었던 고로 충격과 공포를 불러왔습니다.
'윤상이 이제 자기 음악을 못 하는 거냐'며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다고.
본인은 그런 건 모르고 그냥 계약 조건이 제일 좋아서 승낙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저작권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10억 정도의 계약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계약은 매니지먼트 계약이 아니라 정규앨범 4~5집 발매, 프로젝트 앨범 1장 등 일 관련 계약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윤상은 SM의 자본력과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고, SM은 이미지 쇄신 + 윤상의 프로듀싱과 곡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꽤 좋은 계약이었던 셈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윈윈한 계약이었던 것.
덕분에 윤상은 아직도 SM을 좋게 평가하고 있으며, 보아와 동방신기 등의 소속 가수들과 꾸준히 작업 중입니다.
우연하게도 오랜 후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평양 공연에는 SM의 Red Velvet이 함께했습니다.
.
7. 유학 이후 근황
2010년이 되어서야 7년간의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귀국과 동시에 상명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강단에 서게 되었고, 이 후 성신여자대학교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직에 취임, 2017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2018년부터는 용인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과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주목받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 업계에서 밀려난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노래 외에도 꾸준히 음반 작업에 참여하며 갈고닦은 실력을 업계에서 인정받고, 왕성히 활동 중입니다.
윤상이 SM으로 영입된 후에는, '다시 만난 세계'처럼 반주(instrumental version)까지 단독으로 선보일 수 있을만큼 더 공들여 내놓은 노래들이 앨범에 더 많이 들어가게 됐다고 합니다.
2013년 후반부터 2014년 초까지는 East4A와 함께 아이유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HISTORY의 '난 너한테 뭐야',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순서대로 내놓았습니다.
최근은 1Piece 결성으로 합작이 좀 뜸해진졌습니다.
부인 심혜진씨와 같이 빅터 우튼이 쓴 책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9월엔 디지털 싱글 날 위로하려거든을 발표했으며, 이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 올해의 노래,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등 2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것은 물론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를 수상하였다! 트로피를 집 안에 장식해둔 것은 물론, 수상내역을 자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윤상이 후일 무한도전에서도 정준하에게 이 상을 보여주며 '흔히 날 발라드 전문 작곡가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성과도 거뒀다'고 자랑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음을 강조한 것으로 봐서 굉장히 자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2014년 11월 데뷔한, 자신의 작곡 팀인 1Piece로 울림엔터테인먼트의 첫 걸그룹인 러블리즈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특히 데뷔 앨범 Girls' Invasion의 타이틀곡 'Candy Jelly Love'를 비롯한 총 5곡을 작곡, 편곡했습니다.
더불어 2015년 10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함께 출연하였고 11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 녹화에 출연했을 때도 러블리즈 멤버들과 함께하는 등 방송에 동반 출연하여 아빠처럼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덕분에 러블리즈 팬들이 윤상을 좋아합니다.
특히나 희대의 명곡이자 여전히 인기 있는 러블리즈의 대표곡 'Ah-Choo'는 많은 이들이 윤상이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안 뒤 윤상의 소녀감성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평론가들은 전반적으로 러블리즈라는 팀은 윤상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고 있으며, 윤상 특유의 마이너한 감성으로 범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나, 곡의 완성도만큼은 최고에 이른다고 호평하였습니다.
2016년 러블리즈 미니 2집 기자 쇼케이스에서 윤상이 러블리즈와의 특별한 인연을 계속적으로 이어갈 것을 선언하였고, 러블리즈를 통하여 본인의 음악적 이상을 펼쳐나갈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다만 2017년에 새로 러블리즈와 작업한 정규 2집 타이틀곡 'WoW!'는 가사와 노래 구성이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안 좋게 말하면 마이너해서 팬들과 대중들의 호불호가 뚜렷이 갈렸습니다.
그럼에도, 후속으로 발표한 2017년 5월 2일 발표된 러블리즈의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지금, 우리의 동명 타이틀 곡 '지금, 우리'가 5월 16일 SBS MTV THE SHOW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작곡가로는 오랜만에 음악 방송 1위 곡을 배출하며 이러한 아쉬움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2017년 4월 말, 일렉트로닉 전문 레이블 '디지털리언 스튜디오'을 론칭했습니다.
5월 초 원피스의 신곡 ‘얼론’의 스템 파일을 공개하고 리믹스 컴피티션을 시작으로 매달 한 곡씩 일렉트로닉 장르의 유망한 신인을 소개하는 ‘디지털리언 나우’(Digitalian NOW)라는 레이블 음원 발매 프로젝트도 시작하는 등, 전문적이고 특화된 장르 레이블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2019년 1월 1일부터 사용 중인 KBS 뉴스 7과 KBS 뉴스 9의 시그널 음악 작곡을 맡았습니다.
또한 2021년 6월 7일부터 사용 중인 JTBC 뉴스룸의 시그널 음악 작곡도 하였습니다.
귀국과 동시에 상명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강단에 서게 되었고, 이 후 성신여자대학교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직에 취임, 2017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2018년부터는 용인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과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주목받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 업계에서 밀려난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노래 외에도 꾸준히 음반 작업에 참여하며 갈고닦은 실력을 업계에서 인정받고, 왕성히 활동 중입니다.
윤상이 SM으로 영입된 후에는, '다시 만난 세계'처럼 반주(instrumental version)까지 단독으로 선보일 수 있을만큼 더 공들여 내놓은 노래들이 앨범에 더 많이 들어가게 됐다고 합니다.
2013년 후반부터 2014년 초까지는 East4A와 함께 아이유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HISTORY의 '난 너한테 뭐야',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순서대로 내놓았습니다.
최근은 1Piece 결성으로 합작이 좀 뜸해진졌습니다.
부인 심혜진씨와 같이 빅터 우튼이 쓴 책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9월엔 디지털 싱글 날 위로하려거든을 발표했으며, 이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 올해의 노래,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등 2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것은 물론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를 수상하였다! 트로피를 집 안에 장식해둔 것은 물론, 수상내역을 자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윤상이 후일 무한도전에서도 정준하에게 이 상을 보여주며 '흔히 날 발라드 전문 작곡가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성과도 거뒀다'고 자랑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음을 강조한 것으로 봐서 굉장히 자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2014년 11월 데뷔한, 자신의 작곡 팀인 1Piece로 울림엔터테인먼트의 첫 걸그룹인 러블리즈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습니다.
특히 데뷔 앨범 Girls' Invasion의 타이틀곡 'Candy Jelly Love'를 비롯한 총 5곡을 작곡, 편곡했습니다.
더불어 2015년 10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함께 출연하였고 11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 녹화에 출연했을 때도 러블리즈 멤버들과 함께하는 등 방송에 동반 출연하여 아빠처럼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덕분에 러블리즈 팬들이 윤상을 좋아합니다.
특히나 희대의 명곡이자 여전히 인기 있는 러블리즈의 대표곡 'Ah-Choo'는 많은 이들이 윤상이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안 뒤 윤상의 소녀감성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평론가들은 전반적으로 러블리즈라는 팀은 윤상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고 있으며, 윤상 특유의 마이너한 감성으로 범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나, 곡의 완성도만큼은 최고에 이른다고 호평하였습니다.
2016년 러블리즈 미니 2집 기자 쇼케이스에서 윤상이 러블리즈와의 특별한 인연을 계속적으로 이어갈 것을 선언하였고, 러블리즈를 통하여 본인의 음악적 이상을 펼쳐나갈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다만 2017년에 새로 러블리즈와 작업한 정규 2집 타이틀곡 'WoW!'는 가사와 노래 구성이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안 좋게 말하면 마이너해서 팬들과 대중들의 호불호가 뚜렷이 갈렸습니다.
그럼에도, 후속으로 발표한 2017년 5월 2일 발표된 러블리즈의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지금, 우리의 동명 타이틀 곡 '지금, 우리'가 5월 16일 SBS MTV THE SHOW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작곡가로는 오랜만에 음악 방송 1위 곡을 배출하며 이러한 아쉬움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2017년 4월 말, 일렉트로닉 전문 레이블 '디지털리언 스튜디오'을 론칭했습니다.
5월 초 원피스의 신곡 ‘얼론’의 스템 파일을 공개하고 리믹스 컴피티션을 시작으로 매달 한 곡씩 일렉트로닉 장르의 유망한 신인을 소개하는 ‘디지털리언 나우’(Digitalian NOW)라는 레이블 음원 발매 프로젝트도 시작하는 등, 전문적이고 특화된 장르 레이블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2019년 1월 1일부터 사용 중인 KBS 뉴스 7과 KBS 뉴스 9의 시그널 음악 작곡을 맡았습니다.
또한 2021년 6월 7일부터 사용 중인 JTBC 뉴스룸의 시그널 음악 작곡도 하였습니다.
8. 음악 특징 및 평가
윤상 - Tango por Uno
|
강수지 - 잊으라니
|
- 작법
- 사운드
- 멜로디
- 보컬
- 프로듀싱
- 이수영 - 6.5집 꽃들은 지고 (TV방송 1위)
- 가인 - 탱고, 일렉트로니카를 섞은 ‘돌이킬 수 없는’을 이민수와 공동 작곡하여 가인이 오랜만에 지상파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 아이유 - Real+ 앨범 타이틀곡인 '나만 몰랐던 이야기'를 주었고, Last Fantasy에서도 '잠자는 숲 속의 왕자'를 리메이크해서 주었으며 후술하겠지만, 그 외에도 음악적 교류를 계속 하고 있는 듯.
- 박효신 - 정규 2집 'Second Story'의 3번 트랙 '먼 곳에서'와 10번 트랙 '편지'를 작곡했습니다. 두 곡 모두 작사는 박창학.
- 윤종신 - 윤종신의 월간 윤종신 2012년 10월호 '나쁜'을 작곡 및 편곡했습니다. 둘 다 뮤비에 출연한 건 덤.
- 유희열(토이) - 토이 정규 앨범에 4집부터 6집까지 총 3번 보컬로써 참여한 바 있습니다. 7집에는 없는 듯합니다.
- 성시경 - 2011년 성시경 7집에 수록된 '아니면서'는 박창학 작사, 윤상 작곡입니다. 성시경 자신이 맘에 들어하는 곡 중에 하나로 꼽기도 합니다.
9. 완벽주의
노래의 탄생 2화 中
|
노래의 탄생 4화 中
|
- 강수지는 녹음하면서, 윤상때문에 2~3번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사건인즉슨, 윤상이 작곡한 1집 보라빛 향기가 초대박이 나고 2집 흩어진 나날들 녹음 중, 이 정도면 다 된 것 같음에도 윤상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녹음을 시키자 강수지는 "제대로 나왔잖아."라고 대꾸하였고, 이에 윤상은 "제대로 안 나왔잖아." 라고 받아쳤다고. 이어 윤상이, "이거 누구 노래야? 여기서 한 번 녹음하고 나온 이 노래, 평생 네 곡으로 남을텐데.. 이게 내 노래야?"라며 말을 덧붙이자, 이 말을 들은 강수지는 헤드폰을 벗고 녹음실을 빠져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윤상은 강수지가 얼마되면 다시 들어올 것이라 생각해서 녹음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계속 기다리는데도 강수지가 안 들어오자 밖에 나가보니 그제야 울고있는 강수지의 모습을 보게되었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하며, 윤상은 그 사람의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의 입장으로서, 두번째도 히트를 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도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 입영열차 안에서를 부른 김민우 역시 윤상 때문에 녹음실에서 운 적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녹음본을 들려주고는 어떠냐고 묻는 윤상에게 김민우는 '괜찮은 것 같다'고 답했고, 이 말을 들은 윤상은 그에게 "집에 가라. 그냥." 이라 말했다고.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김민우가 울었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꺼내며, 윤상 본인은 곡을 만든 작곡가 입장에서는 가수 본인이 녹음을 하다가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할게요.' 라고 말하는 가수가 제일 좋다 밝히면서, 반대로 작곡가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네가 이런 녹음본을 설마 남겨서 음반 발매하고 싶다는거냐?'는 상태에서 '다 한 것 같은데요.'며 만족하는 듯한 태도를 갖고 있는 가수에게는 섭섭하다고 하는데, 김민우는 후자와 같은 케이스였기에 윤상의 심기를 거스른 것입니다. 윤상은 지금에서야 그때 일을 생각해보면 김민우에게 미안하다고 밝혔습니다.
10. 뮤지션들의 뮤지션
공연의 神 이승환이, 음악의 神 윤상에게이승환뮤지션들이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중의 한 명으로, 굉장한 완벽주의자에요.
정말 한땀 한땀을 점묘법으로 완성해가는데, 그것들이 주는 완성도에 많은 사람들이 압도되는.
이적1990년 내가 데뷔 했을때, 윤상은 이미 22살의 나이로 이미 우리 가요계를 한번 뒤집고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난 동료이기 전에 그의 팬이었고, 그는 김현철, 정석원 등과 함께 나의 노래를 초라하게 느낄 정도로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음악을 했습니다.
나는 그를 동경했고 그와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가요계의 우아함의 상징.
- 윤종신세상에서 형을 제일 좋아하는 팬 대회를 연다면 내가 1등할 자신있거든요, 그러니깐 나를 위해서라도 음악 좀 더 많이 만들어줘요.
더 듣고 싶어.
더 듣고 싶으니깐.
실제로 제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 중에 하나거든요.
제가 입버릇처럼 얘기했던게, "내가 여자로 태어났었으면, 난 윤상을 사귀었을겁니다.
" 라고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절대 아니에요.
어깨 좁고 허리 긴 형!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요.
정말 아이돌 음악부터 시작해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적 자양분이 많은 선배이자 최고의 뮤지션.
- 유희열최고의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죠.
저는 윤상 씨 처음에 음원나올때, 그 테이프였어요.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어요.
일단 사운드가 기존에 쓰지 않았던 본인만의 독특한 사운드가 있고, 거기에 아날로그가 있어요.
예를 들어 첼로 소리가 들어간다거나, 동양적인 어떤 느낌이라던가.
김형석저희가 공부할 때, 미디 공부를 하면, 항상 윤상씨가 대표적인 예였고, 비슷하게 흉내 내려고 많이 따라했었던.
뮤지윤상 선배님을 존경했어요.
제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가 컴퓨터 음악으로 시작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노영심 선배님이랑 같이 방바닥에 앉아서 찍은 음반있죠? 그 집에서 사진찍은건데 그것조차 너무 멋있었고, 그리고 그걸 갖다가 흑백화면을 보며 한음한음 제가 카피를 하며 음악을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림.
정말 한땀 한땀을 점묘법으로 완성해가는데, 그것들이 주는 완성도에 많은 사람들이 압도되는.
이적1990년 내가 데뷔 했을때, 윤상은 이미 22살의 나이로 이미 우리 가요계를 한번 뒤집고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난 동료이기 전에 그의 팬이었고, 그는 김현철, 정석원 등과 함께 나의 노래를 초라하게 느낄 정도로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음악을 했습니다.
나는 그를 동경했고 그와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가요계의 우아함의 상징.
- 윤종신세상에서 형을 제일 좋아하는 팬 대회를 연다면 내가 1등할 자신있거든요, 그러니깐 나를 위해서라도 음악 좀 더 많이 만들어줘요.
더 듣고 싶어.
더 듣고 싶으니깐.
실제로 제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 중에 하나거든요.
제가 입버릇처럼 얘기했던게, "내가 여자로 태어났었으면, 난 윤상을 사귀었을겁니다.
" 라고 얘기했었는데, 지금은 절대 아니에요.
어깨 좁고 허리 긴 형!워낙 스펙트럼이 넓어요.
정말 아이돌 음악부터 시작해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적 자양분이 많은 선배이자 최고의 뮤지션.
- 유희열최고의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죠.
저는 윤상 씨 처음에 음원나올때, 그 테이프였어요.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어요.
일단 사운드가 기존에 쓰지 않았던 본인만의 독특한 사운드가 있고, 거기에 아날로그가 있어요.
예를 들어 첼로 소리가 들어간다거나, 동양적인 어떤 느낌이라던가.
김형석저희가 공부할 때, 미디 공부를 하면, 항상 윤상씨가 대표적인 예였고, 비슷하게 흉내 내려고 많이 따라했었던.
뮤지윤상 선배님을 존경했어요.
제가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가 컴퓨터 음악으로 시작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노영심 선배님이랑 같이 방바닥에 앉아서 찍은 음반있죠? 그 집에서 사진찍은건데 그것조차 너무 멋있었고, 그리고 그걸 갖다가 흑백화면을 보며 한음한음 제가 카피를 하며 음악을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림.
11. 음반
윤상의 음반 목록
|
|||
정규 앨범
|
|||
1집 윤상
(1990) |
2집 Part I
(1992) |
2집 Part II
(1993) |
3집 Clichè
(2000) |
4집 移徙 (이사)
(2002) |
5집 There Is A Man...
(2003) |
6집 그땐 몰랐던 일들
(2009) |
|
EP
|
|||
Renacimiento
(1996) |
Insensible
(1998) |
||
싱글
|
|||
날 위로하려거든
(2014) |
The Duets PART1
(2014) |
그게 난 슬프다
(2016) |
|
기타 음반
|
|||
골든힛트
(1996) |
Songbook: Play with Him!
(2008) |
mo:tet
(2008) |
Yoonsang 20th Anniversary
(2011) |
참여 OST
|
|||
파일럿 OST
(1993) |
알바트로스 OST
(1996) |
KBS 누들로드 OST
(2009) |
아키에이지 OST
(2013) |
보컬 참여 앨범
|
|||
A Night In Seoul
(토이 4집) (1999) |
Fermata
(토이 5집) (2001) |
...그리고 김현철
김현철 8집 (2002) |
Thank You
토이 6집 (2007) |
Swallow
조원선 1집 (2009) |
Last Fantasy
아이유 2집 (2012) |
||
정규 앨범
|
|||
1집 윤상
(1990) |
2집 Part I
(1992) |
2집 Part II
(1993) |
3집 Clichè
(2000) |
4집 移徙 (이사)
(2002) |
5집 There Is A Man...
(2003) |
6집 그땐 몰랐던 일들
(2009) |
|
EP
|
|||
Renacimiento
(1996) |
Insensible
(1998) |
||
싱글
|
|||
날 위로하려거든
(2014) |
The Duets PART1
(2014) |
그게 난 슬프다
(2016) |
|
기타 음반
|
|||
골든힛트
(1996) |
Songbook: Play with Him!
(2008) |
mo:tet
(2008) |
Yoonsang 20th Anniversary
(2011) |
참여 OST
|
|||
파일럿 OST
(1993) |
알바트로스 OST
(1996) |
KBS 누들로드 OST
(2009) |
아키에이지 OST
(2013) |
보컬 참여 앨범
|
|||
A Night In Seoul
(토이 4집) (1999) |
Fermata
(토이 5집) (2001) |
...그리고 김현철
김현철 8집 (2002) |
Thank You
토이 6집 (2007) |
Swallow
조원선 1집 (2009) |
Last Fantasy
아이유 2집 (2012) |
12. 방송
방영 연도
|
방송사
|
방송명
|
비고
|
1996년
|
|||
8월 28일
|
KBS2 |
가족오락관
|
게스트
|
2009년
|
|||
1월 14일
|
MBC |
라디오 스타
|
게스트
|
2월 3일
|
KBS2 |
상상플러스 시즌 2
|
|
7월 24일
|
유희열의 스케치북
|
||
2010년
|
|||
7월 9일, 7월 30일
|
KBS2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2011년
|
|||
4월 11일, 12월 5일 ~ 12일
|
MBC |
공감토크쇼 놀러와
|
게스트
|
7월 22일
|
KBS2 |
유희열의 스케치북
|
|
2011년 ~ 2012년
|
|||
2011년 9월 9일 ~ 2012년 4월 20일
|
MBC |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
심사위원
|
2012년
|
|||
5월 24일
|
EBS |
스페이스 공감
|
|
10월 5일
|
KBS2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11월 30일
|
SBS |
GO Show
|
|
11월 25일 ~ 12월 9일
|
KBS2 |
1박 2일 시즌 2
|
|
2012년 ~ 2013년
|
|||
2012년 9월 19일 ~ 2013년 3월 27일
|
/
|
뮤직 트라이앵글
|
진행
|
2013년
|
|||
1월 4일 ~ 2월 1일
|
엠넷 |
보이스 키즈
|
심사위원
|
4월 26일, 7월 5일, 12월 20일
|
KBS2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2014년
|
|||
8월 1일 ~ 9월 5일
|
tvN |
꽃보다 청춘 페루편
|
|
10월 17일
|
KBS2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11월 10일
|
SBS |
힐링캠프
|
|
12월 12일 ~ 12월 19일
|
KBS2 |
유희열의 스케치북
|
|
2015년
|
|||
7월 4일 ~ 8월 22일
|
MBC |
무한도전 -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
|
7월 8일 ~ 8월 26일
|
채널CGV |
무비 스토커
|
|
10월 30일
|
KBS2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11월 14일 ~ 11월 21일
|
MBC |
마이 리틀 텔레비전
|
|
12월 3일
|
KBS2 |
해피투게더 3
|
게스트
|
2015년 ~ 2016년
|
|||
2015년 7월 19일 ~ 2016년 1월 26일
|
tvN |
집밥 백선생 시즌 1
|
|
2016년
|
|||
2월 9일 ~ 11월 20일
|
SBS |
판타스틱 듀오
|
|
8월 11일
|
엠넷 |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3
|
게스트
|
10월 5일 ~ 11월 23일
|
tvN |
노래의 탄생
|
프로듀서
|
10월 14일 ~ 12월 9일
|
엠넷 |
판스틸러 - 국악의 역습
|
|
12월 23일 ~ 12월 30일
|
믹스 테이프
|
||
2016년 ~ 2017년
|
|||
2016년 11월 11일 ~ 2017년 1월 27일
|
JTBC |
팬텀싱어
|
프로듀서
|
2017년
|
|||
8월 11일 ~ 11월 3일
|
JTBC |
팬텀싱어 2
|
프로듀서
|
2018년
|
|||
1월 17일 ~ 2018년 4월 18일
|
SBS |
싱글 와이프 2
|
|
7월 18일
|
MBC |
라디오 스타
|
게스트
|
2018년 ~ 2019년
|
|||
2018년 11월 10일 ~ 2019년 1월 26일
|
채널A |
보컬플레이
|
프로듀서
|
2019년
|
|||
3월 1일
|
KBS2 |
유희열의 스케치북
|
게스트
|
4월 12일 ~ 7월 12일
|
JTBC |
슈퍼밴드
|
프로듀서
|
8월 31일
|
MBC |
놀면 뭐하니?
|
|
10월 5일 ~ 11월 23일
|
tvN |
노래의 탄생
|
프로듀서
|
9월 20일 ~ 11월 8일
|
노래에 반하다
|
||
2020년
|
|||
3월 6일
|
엠넷 |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 7
|
게스트
|
6월 5일
|
KBS1 |
다큐멘터리 3일 실패해도 괜찮아 - 목포 괜찮아마을 72시간
|
내레이션
|
4월 10일 ~ 7월 3일
|
JTBC |
팬텀싱어 3
|
프로듀서
|
7월 15일
|
MBC every1 |
대한외국인
|
게스트
|
9월 27일
|
SBS |
선미네 비디오가게
|
|
2021년
|
|||
5월 26일
|
tvN |
곽씨네 LP바
|
게스트
|
6월 21일 ~ 10월 4일
|
JTBC |
슈퍼밴드2
|
프로듀서
|
2022년
|
|||
6월 21일
|
JTBC |
뉴페스타
|
게스트
|
7월 17일
|
MBC |
출발! 비디오 여행
|
나레이션
|
2018년 ~ 현재
|
|||
2018년 9월 30일 ~ 현재
|
MBC |
복면가왕
|
고정 패널
|
13.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14. 라디오 DJ
15. 광고
- 2001년 리바트 (이현우, 김현철, 윤종신과 공동 출연)
- 2001년 랄프로렌 로맨스
- 2002년 LG텔레콤 파워요금제 (배용준과 공동 출연)
- 2003년 미로비젼 그녀에게
- 2003년 우정사업본부 우체국금융 (아내 심혜진과 공동 출연)
- 2011년 삼성전자 하우 투 리브 스마트 레슨 (아이유와 공동 출연)
- 2011년 월트디즈니특별전
- 2013년 삼성전자 갤럭시 S4
- 2014년 다음검색 (유희열, 이적과 공동 출연)
- 2014년 삼성화재 (유희열, 이적과 공동 출연)
- 2017년 사이게임즈 섀도우버스 (박나래, 개리, 윤건과 공동 출연)
- 2020년 뮤직카우
16. 서적
17. 홍보대사
18. 음악감독
19. 가족 관계
- 부인인 심혜진씨는 1975년생으로, 윤상의 7살 연하입니다. 2002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는데, 윤상의 두번째 EP 앨범인 'Insensible'의 수록곡 '언제나 그랬듯이'의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당시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심혜진씨와 뮤비를 촬영하며 배우와 가수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둘이 보자마자 서로 필이 꽂혔다는 것. 당시 소속사 사장이었던 이승환이 뮤비 촬영 기간 내내 회식을 주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윤상이 "앨범 나오면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까요?"라고 물으면서 전화번호를 알아내기도 했다고. 부인도 윤상이 마음에 들었던지라 그때 전화번호도 주고, 윤상의 차가 고장 났을 때 본인 차로 태워다 줬다고 합니다. 윤상의 직업적 특성이나 유학 시절 고생한 것 때문에 늘 부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언급하는 편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를 마쳤으며, 결혼 이후 연예계 활동은 접었습니다. 윤상이 아내의 연기활동에 대해 조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듣고 연기를 안 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며, 그렇기에 윤상은 지금에야 아내가 연기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면 적극 추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장남은 2003년생 이찬영 군으로 굉장한 훈남으로 성장하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장점만 쏙 닮은 외모에 현재 미국 뉴저지주 주니어 수영선수를 하고 있어 피지컬도 좋은편이라 아이돌 뺨친다는 평을 듣는 중. 미국에서 태어나 성장한지라 한국어가 유창한 편은 아닙니다. 방송에 공개 이후 수년간 꾸준히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아이돌상’이라고 언급되며 외모로 주목받았습니다. 2021년 5월 tvN '곽씨네 LP바'에 출연한 윤상은 "아들이 원래 수영선수를 10년 동안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영선수를 못 하는 상황이 되자 '허락해주신다면 음악을 열심히 해보겠다'더라"고 아들이 음악으로 전향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2023년 9월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신인 아이돌 그룹 멤버로 데뷔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20. 인간 관계
- 노총각 4인방 (김현철, 이현우, 윤종신)윤상은 한때 위 3명과 같이 묶이며 연예계 대표 노총각 4인방으로 유명했었습니다. 연예인 중에서 대표 노총각을 꼽으면 항상 저 네 명이 세트로 따라다녔을 정도. 하지만 윤상이 제일 먼저 클럽을 탈퇴했으며, 지금은 네 명 모두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 되었습니다. 윤상, 김현철, 윤종신, 이현우 순으로 탈퇴하였습니다.김현철일명 '족보 브레이커'. 윤상은 1968년생이고, 윤종신과 김현철은 1969년생 동갑내기인데, 윤종신은 윤상을 형이라 깍듯히 부르는 반면, 김현철은 윤상을 친구처럼 막연하게 지내는 사입니다. 물론 이는 윤종신보다 김현철이 윤상과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하고도 깊은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중에서도 김현철은 윤상을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이라는 대선배들에게 연결시켜주는 등 꽤 교류가 있었고, 덕분에 윤상은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시스트 자리에 제의받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그 동네 멤버 베이시스트 중 가장 곱상한 외모여서 뽑히게 된 것도 있었고, 윤상은 저 둘이 너무 챙겨주자 그 자리가 부담스러워 거절했습니다.윤종신 윤종신과는 가수 데뷔를 같은 해에 했었습니다. 허나 윤종신은 윤상에 대해 '동료이기 전에 윤상의 팬이었다' , '나의 노래를 초라하게 느낄 정도로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음악을 했습니다. 나는 그를 동경했고 그와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고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윤상의 곡을 받고싶었던 윤종신은 MBC 라디오국 화장실에서 곡을 받을 수 없겠냐 간청을 했고, 윤상 역시 긍정적으로 답했다만, 둘다 너무 바빴기에 흐지부지 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나중에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서도 윤상에게 번번히 곡을 요청했지만 곡이 잘 안 나온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하며 2012년 드디어 월간윤종신 프로젝트때서야 협업을 하게되었고, 10월호에 실리게 되었는데, 곡 제목이 바로 '나쁜'입니다. 이에 윤종신은 '나쁜' 형 윤상이라 덧붙였습니다. 이 외에도 윤종신은 윤상을 유희열, 정재형, 김동률 등 섬세한 예술가 타입 오빠부대 뮤지션의 프로토 타입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정재형은 윤상 짭퉁이라고 합니다. 농담이지만 윤상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발언입니다. 음악적 외적으로는 윤상을 굉장히 자주 놀려먹곤 하는데, 1박 2일에선 발라드의 조상님, 권영길 의원이라며 놀렸습니다. "그러니까 노태우 대통령때. 문민정부 전이죠!" 물론 음악적으론 굉장히 높게 평가를 하는데, 대표적으로 그를 보고 "우리나라 가요계의 우아함의 상징." 이라 칭한 것입니다.
- 김현철일명 '족보 브레이커'. 윤상은 1968년생이고, 윤종신과 김현철은 1969년생 동갑내기인데, 윤종신은 윤상을 형이라 깍듯히 부르는 반면, 김현철은 윤상을 친구처럼 막연하게 지내는 사입니다. 물론 이는 윤종신보다 김현철이 윤상과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하고도 깊은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중에서도 김현철은 윤상을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이라는 대선배들에게 연결시켜주는 등 꽤 교류가 있었고, 덕분에 윤상은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시스트 자리에 제의받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그 동네 멤버 베이시스트 중 가장 곱상한 외모여서 뽑히게 된 것도 있었고, 윤상은 저 둘이 너무 챙겨주자 그 자리가 부담스러워 거절했습니다.
- 윤종신 윤종신과는 가수 데뷔를 같은 해에 했었습니다. 허나 윤종신은 윤상에 대해 '동료이기 전에 윤상의 팬이었다' , '나의 노래를 초라하게 느낄 정도로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음악을 했습니다. 나는 그를 동경했고 그와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고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윤상의 곡을 받고싶었던 윤종신은 MBC 라디오국 화장실에서 곡을 받을 수 없겠냐 간청을 했고, 윤상 역시 긍정적으로 답했다만, 둘다 너무 바빴기에 흐지부지 됐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나중에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서도 윤상에게 번번히 곡을 요청했지만 곡이 잘 안 나온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하며 2012년 드디어 월간윤종신 프로젝트때서야 협업을 하게되었고, 10월호에 실리게 되었는데, 곡 제목이 바로 '나쁜'입니다. 이에 윤종신은 '나쁜' 형 윤상이라 덧붙였습니다. 이 외에도 윤종신은 윤상을 유희열, 정재형, 김동률 등 섬세한 예술가 타입 오빠부대 뮤지션의 프로토 타입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정재형은 윤상 짭퉁이라고 합니다. 농담이지만 윤상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발언입니다. 음악적 외적으로는 윤상을 굉장히 자주 놀려먹곤 하는데, 1박 2일에선 발라드의 조상님, 권영길 의원이라며 놀렸습니다. "그러니까 노태우 대통령때. 문민정부 전이죠!" 물론 음악적으론 굉장히 높게 평가를 하는데, 대표적으로 그를 보고 "우리나라 가요계의 우아함의 상징." 이라 칭한 것입니다.
- 박창학작사가 박창학은 윤상과 20년 넘은 친구로, 충암고 시절 윤상과 '페이퍼 모드'라는 밴드에 같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고교 수련회 때 윤상의 기타를 보고 엄청나게 칭찬해 준 옆반 반장이었습니다. 당시 윤상은 리드기타가 아니라 백킹/리듬기타를 쳤는데 그래서 '얘 좀 특이하네?!'라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처음에는 박창학은 자기보다 음악도 더 듣고 같이 놀러 다니는데 공부도 잘 해서 짜증이 났었다고 합니다. 데뷔 초반부터 윤상은 본인 곡의 가사는 전부 박창학에게 맡기고 있으며, 작업 초기단계에서도 계속 같이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윤상이 내는 앨범은 늘 'Produced by 윤상, 박창학'이라는 크레딧이 적혀 있습니다. 윤상은 그를 가리켜 "내 음악의 절반은 박창학입니다. 내 앨범은 사실 2인조 밴드가 만드는 셈"이나, "내 편곡은 한 시대의 고민에 지나지 않지만 그(박창학)의 가사가 내 편곡 위에 앉으면 그때서야 '노래'로 마침표가 찍힙니다." 라는 말을 했을정도로 박창학에게 크게 의지합니다. 3집부터는 제목까지 박창학이 일임해서 짓는다고. 싱어송라이터와 작사가가 이렇게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나가는 케이스는 대한민국 가요 역사에 이들이 거의 유일할 것입니다. 참고로 그 이전에 윤상은 작사도 해왔지만 박창학의 가사를 읽어보곤 거의 무조건적으로 맡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박창학이 윤상이 쓴 곡을 전부를 하는 건 아닌데 99%는 박창학의 가사라 생각해도 좋습니다. 특히 자신의 정규앨범은 거의 모든 곡이 그의 가사입니다. 허나 최근엔 윤상과 협업이 거의 없는데, 사실 이건 윤상 본인이 곡을 별로 안 만드는 이유도 있습니다.
- 유희열유희열과는 각별한 사입니다. 유희열 본인이 ‘데뷔하고 유명해지면 윤상하고 친해지는 게 꿈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윤상 오덕’ '윤상은 예전 노래, 외모 다 안 촌스럽다' '내가 여자였으면 윤상하고 사귀었을 거다' '윤상은 진짜 멋있다' 등의 발언을 했을 정도로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고, 한때 유희열이 자기 음악색이 모호한 것 같아 고민하던 때, 윤상에게 “색이 없는것도 네 색이야” 라는 말을 듣고 용기를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유희열은 윤상의 보컬을 매우 좋아해 토이 앨범에도 객원보컬로 자주 기용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역시 라디오 프로에도 자주 초대했습니다. 스케치북에서는 윤상과 함께 사랑하오를 부르며 꽃다발을 바치고 무릎베게를 하고…. 이하 생략. 한때 윤상 공홈에 이런 그림을 그려서 준 적이 있습니다.
- 김이나작사가 김이나와의 관계도 각별합니다. 김이나가 윤상의 오랜 팬이였으며, 김이나를 통해서 윤상은 다시 대중음악 메인스트림에 작곡가로 복귀 할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인연은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의 곡을 윤상에게 부탁했는데, 진척이 너무 느려 김이나가 이민수와의 협업을 제의했다고 합니다. 윤상에 의하면 이민수와의 협업을 통해서 현재 대중음악의 작법에 대해서 많이 배웠으며, 결국 1Piece의 그림을 그리는 단초가 될수 있었다고 합니다.
21. 이야기들
external/pds.joi... | 윤상 베이스 |
그의 베이스에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해골 마크'가 붙어있습니다.
|
- 1990년대 초반에는 오빠부대 아이돌이었지만 의외로 스캔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유인즉슨 학생 시절 좋아했던 여자애가 받았던 선물을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난 공부 잘하는 애가 좋지 기타 잘 치는 애는 별로야” 라고 해서, 차였다는 것 보다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음악가를 꿈꿨는데 그게 폄하된 것에 충격을 받아 여자에게 거의 맘 닫고 살았다 카더라...라는 건 본인 얘기고, 그 외모에 연애를 안 했을 리가 있나. 신해철은 윤상의 호스트스테이션이라는 드립을 쳤으며 윤종신은 “윤상이 초식남? 유희열과 더불어 초육식남이다” 라고 폭로했습니다.
- 윤상은 90년대 초에 자신이 아이돌처럼 소비되는 것에 지쳐서 예능에 거리감을 두다가 2000년대부터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예능에 발을 다시 담그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의외로 본인의 의사가 강했습니다. 조용하고 잔잔한 이미지를 탈피해 "나도 좀 웃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앞서 서술되었듯, 당시 시트콤 연기를 도전하고 모 토크쇼에도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등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다만 본인은 흑역사로 생각하는듯합니다. 이후 윤종신이 본격적으로 예능을 하는 걸 보고 좀 안쓰러웠다는데, 생각보다 훨씬 대박이 터져 윤종신의 본업을 모르고 개그맨인줄 아는 세대가 등장할 정도가 되었으니 참고로 윤종신은 윤상과 달리 원래부터 예능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유희열에겐 "내가 그러는 걸 봐서 니가 손 안 대고 코푼 거다"라고 말했었는데 유희열은 그 이전에 뮤직비디오나 라디오에서 충분히 망가져왔었고 윤종신처럼은 아니지만 예능계에 나름 안착한 셈입니다.그의 베이스에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해골 마크'가 붙어있습니다.
- 원피스를 좋아합니다. 실제로 본인이 짰던 작곡팀의 이름이 1Piece(원피스)기도 하며, 그 모티브를 만화에서 따온 것이 맞다고 인정하기 까지 했습니다. 자신이 여기서 루피 역할이라고 합니다. 무한도전에서 파트너 정준하와의 만남 도중 그의 작업실에 몽키 D. 루피 피규어, 퍼스트 건담의 건담헤드 등이 진열되어있는 것으로 모자라 집밥 백선생에서 숙제로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되었는데 주방 수납장에는 밀짚모자 해적단 마크가 있고 거실에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졸리 로져가 걸려 있습니다.
- 무한도전에서 비판을 받으면 희열을 느낀다며 심지어는 더 거칠게 다뤄달라고도 했습니다. 곽씨네 LP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영감을 주는 감정 또한 열등감에서 오는 것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 사용하는 베이스 기타는 초기엔 뮤직맨 스팅레이와 '큐비키(Kubicki)'社의 'Ex-Factor'를 사용했으나, 이후엔 Moollon의 Jazz Bass를 사용합니다. 위의 해골 스티커가 붙은 베이스다.
- 2014년 12월 19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당시, 신민아가 혼자만의 겨울을 부를때 건반 연주를 하다가 노래가 끝날 즈음에 코피를 흘렸습니다.(?!)
- 입맛이 상당한 초딩 입맛입니다. 떡볶이를 좋아합니다. 수요미식회 떡볶이편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 생각보다 뉴스 시그널 곡을 많이 작곡하였습니다. 2017년 2월 19일부터 사용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의 오프닝 타이틀 곡을 작곡한 것은 물론 2019년 1월 1일부터 사용 중인 KBS 뉴스 7과 KBS 뉴스 9의 시그널 음악 작곡을 맡기도 했습니다. 또한 2021년 6월 7일부터 사용 중인 JTBC 뉴스룸의 시그널 음악 작곡도 하였습니다.
- 본명은 예명으로 '윤상'을 택한 이유는 주영형 유괴 살인 사건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침 윤상은 피해자 이윤상과 나이도 비슷했기에 더욱 이름을 피할 이유가 있던 것.
- 나이에 비해 동안인 편이고 사실 데뷔 때랑 그리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근데 하필이면 윤상의 주변 인물들에 이승환, 김정민, 신승훈 등을 비롯한 초동안 연예인들이 있어 묻혀 노안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면 알듯이 윤상 또한 50대의 나이로는 안 보이는 동안 외모의 소유자입니다. 윤상 본인도 평소에는 실제 나이보다는 어리다는 말을 듣지만 다른 이들 옆에만 있으면 노안 소리를 들으며 억울해하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이승환과 윤상은 3살차이로, 이승환이 윤상보다 형이지만, 외모만 보고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윤상이 이승환을 보며 호칭을 '형'이라 하자 이를 몰랐던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했고, 이에 윤상이 충격받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탄생때는 주변에서 하도 이승환과 외모 비교를 한 것도 모자라, 윤상의 팬들마저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피부만 어떻게 해달라며 부탁하자, 윤상 본인도 부끄럽다며 처음으로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팬텀싱어 전 시즌의 심사위원을 맡았으나 정작 그 참가자들이 복면가왕에 나오면 알아보는 경우가 적다. 오히려 서울대 참가자들 선배인 카이와 팬텀싱어와 연관없는 김현철이 맞췄습니다. 170차 경연에 백형훈이 참가했을 때 그 모습이 두드러지게 보였습니다. 이는 슈퍼밴드도 마찬가지며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방송만 여러 개라 그런 듯.
- 펭수를 좋아하는 '펭클럽'의 회원인듯합니다. 펭수가 크리스마스 캐롤송 프로젝트에서 음악의 프로듀서, 즉 음악대의 단장 역을 제안하자 이를 흔쾌히 승락하기도 했으며, 프로젝트 내내 펭수를 칭찬, 격려하고 콩깍지 제대로 씌인 모습을 보이며 덕질을 하였습니다. 이후 비하인드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20년 초부터 펭수 빵과 우유만 골라먹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동물음악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펭수가 엣헴송을 부르자, 직접 들었다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펭수는 윤상이 진행하는 너에게 음악에 초대되어 다시 한번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 성격은 대체로 소심 만렙. 본인의 작업 스타일에 걸맞게 사소한 것에 신경질을 잘 부리는 듯합니다. 왕년엔 조수석이나 뒷좌석에서 앞차 옆차 운전을 열을 올리며 욕했다고 합니다. 정작 운전자는 가만히 있는데도. 심지어 부인과 연애 중 기사가 터지자 패기돋게 장인 장모 인사를 가기는 커녕 "어...어떡하지;;" 하다가 1년이 흘러 빡친 부인이 미국으로 가버린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후엔 나이도 먹고 가정도 있어서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합니다. 이런 소심함 덕에 1박 2일에서 귀여움 터지는 아저씨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조근조근 단호박 돋게 할 말 다 하는 편. "내가 다시는 너랑 '테레비' 안한다"
22. 수상 경력
23. 표절 논란
1989년 윤상이 작곡한 변진섭의 로라
|
1985년 발매된 사이토 유키의 정열
|
24. 병역 기피 논란
25. 방자경의 종북몰이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