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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안정환
安貞桓 | Ahn Jung Hw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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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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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월 27일 (4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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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군
(現 경기도 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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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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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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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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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cm, 85kg, AB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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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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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공격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해설위원, 방송인, 사업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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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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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림초등학교 (졸업)
남서울중학교 (졸업) 서울공업고등학교 (졸업) 아주대학교 (경영학 / 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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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
1998년 대우 로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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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발
|
양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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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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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 9번, 10번, 11번, 19번,
26번, 30번, 36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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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클럽
|
부산 대우 로얄즈/부산 아이콘스 (1998~2002)
→ AC 페루자 (2000~2002 / 임대) 시미즈 S펄스 (2002~2003)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4~2005) FC 메스 (2005~2006) MSV 뒤스부르크 (2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부산 아이파크 (2008) 다롄 스더 (2009~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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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71경기 17골 (대한민국 / 2001~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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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3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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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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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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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리혜원 라이프스타일컴퍼니 (대표이사)
MCP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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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
배우자
|
이혜원(2001년 결혼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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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딸 안리원(2004년 5월 3일생)
아들 안리환(2008년 12월 25일생) |
|
부모
|
어머니 안금향
|
|
친척
|
사촌누나 안희정(1970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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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개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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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테리우스, 반지의 제왕, 슈퍼마리오, 안흥국, 지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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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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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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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2001년 결혼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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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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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안리원(2004년 5월 3일생)
아들 안리환(2008년 12월 25일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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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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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안금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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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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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누나 안희정(1970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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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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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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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테리우스, 반지의 제왕, 슈퍼마리오, 안흥국, 지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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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생애
수려한 귀공자처럼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버려 외할머니와 외롭게 성장하는 등, 그가 직접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서 이야기한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사실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외갓집이 원래는 잘 살았던 편이기는 했고 한창 부유했을 적에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안정환이 6살 때 외갓집이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데다가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커피숍을 하다가 망한 뒤 다른 곳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외할머니와 단 둘이 판자촌에서 빈곤하게 살아야했습니다.
흑석동 판자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안정환은 배가 고파서 무랑 배추서리를 하거나, 굿판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어먹고, 옷이 없어서 남의 집 빨래를 훔치는 것은 기본에다가, 산에 흩뿌려진 삐라를 주워서 미군부대에 신고하여 학용품을 마련하고, 방생 기간에 방생되는 물고기를 잡아서 다시 되팔아 돈을 마련하고, 차비가 부족해 버스를 타고 가야될 학교를 걸어서 다니고 차비가 역시 아까워서 학교 체육창고에서 잠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루는 안정환이 할머니에게 100원만 달라고 했다는데, 왜 그러냐고 할머니가 물었더니 나가서 아버지를 사오겠다고 얘기했으며 실제로 차두리의 아버지가 차붐이라는 것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안정환의 힘든 유년 시절을 정리한 기사안정환의 할머니는 축구를 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가뜩이나 잘 못먹는 애라서, 운동까지 하면 배가 더 빨리 꺼질까봐 걱정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축구부가 되면 간식으로 지급하는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어서, 단순히 또래 애들보다 달리기가 조금 빨랐을 뿐인 어린 안정환은 그렇게 축구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어렵게, 굶주린 배를 잡고 시작했던 초등학교 축구부는 후원하던 선배(선배 아버지의 후원)가 졸업을 하면서 지원이 끊겨 버렸고, 축구부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됩니다.
다행히 그해 마지막 경기에 훌륭한 활약을 보인 안정환을 다른 학교에서 유일하게 스카웃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애들은 축구를 관뒀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축구를 하지만 선배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매일같이 피곤한 몸에 여전히 배곯는 고달픈 생활들이 이어집니다.
한 번은 축구부원 숫자대로 지급받은 빵과 우유가 하나 비어버리자 선배 한 명이 안정환을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구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다른 선배가 "그거 내가 먹고 나갔는데?" 한 마디에 화가 나서 그 길로 합숙소를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안정환은 밥 먹듯이 축구부를 이탈하고 복귀하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본인이 말하길 "이 시기에 축구가 즐거워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때 싸움도 많이 하고 다니던 시절이라 실제 조직폭력배에서도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쉬는 날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 공사판을 전전했었는데 당시 수도권 전철 5호선 목동역 건설이 이루어질 때 안정환이 인부로 투입되어 벽돌을 쌓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대표가 되어서도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주고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았기 때문에 금방 돈을 모으지도 못했으며, 이것 때문에 계속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이영표의 보약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에 진학한 안정환은 졸업해서 거액에 프로 축구단에 입단하는 대학교 선배들을 보고 2학년 때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잡았다고 합니다.
1997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 직후 돌아오자마자 후반에 투입되어 혼자 2골 1어시스트하면서 1대2로 지던 팀을 5:2로 역전승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의 재단이었던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부산 대우 로얄즈로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됩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버려 외할머니와 외롭게 성장하는 등, 그가 직접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서 이야기한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사실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외갓집이 원래는 잘 살았던 편이기는 했고 한창 부유했을 적에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안정환이 6살 때 외갓집이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데다가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커피숍을 하다가 망한 뒤 다른 곳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외할머니와 단 둘이 판자촌에서 빈곤하게 살아야했습니다.
흑석동 판자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안정환은 배가 고파서 무랑 배추서리를 하거나, 굿판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어먹고, 옷이 없어서 남의 집 빨래를 훔치는 것은 기본에다가, 산에 흩뿌려진 삐라를 주워서 미군부대에 신고하여 학용품을 마련하고, 방생 기간에 방생되는 물고기를 잡아서 다시 되팔아 돈을 마련하고, 차비가 부족해 버스를 타고 가야될 학교를 걸어서 다니고 차비가 역시 아까워서 학교 체육창고에서 잠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루는 안정환이 할머니에게 100원만 달라고 했다는데, 왜 그러냐고 할머니가 물었더니 나가서 아버지를 사오겠다고 얘기했으며 실제로 차두리의 아버지가 차붐이라는 것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안정환의 힘든 유년 시절을 정리한 기사안정환의 할머니는 축구를 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가뜩이나 잘 못먹는 애라서, 운동까지 하면 배가 더 빨리 꺼질까봐 걱정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축구부가 되면 간식으로 지급하는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어서, 단순히 또래 애들보다 달리기가 조금 빨랐을 뿐인 어린 안정환은 그렇게 축구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어렵게, 굶주린 배를 잡고 시작했던 초등학교 축구부는 후원하던 선배(선배 아버지의 후원)가 졸업을 하면서 지원이 끊겨 버렸고, 축구부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됩니다.
다행히 그해 마지막 경기에 훌륭한 활약을 보인 안정환을 다른 학교에서 유일하게 스카웃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애들은 축구를 관뒀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축구를 하지만 선배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매일같이 피곤한 몸에 여전히 배곯는 고달픈 생활들이 이어집니다.
한 번은 축구부원 숫자대로 지급받은 빵과 우유가 하나 비어버리자 선배 한 명이 안정환을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구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다른 선배가 "그거 내가 먹고 나갔는데?" 한 마디에 화가 나서 그 길로 합숙소를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안정환은 밥 먹듯이 축구부를 이탈하고 복귀하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본인이 말하길 "이 시기에 축구가 즐거워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때 싸움도 많이 하고 다니던 시절이라 실제 조직폭력배에서도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쉬는 날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 공사판을 전전했었는데 당시 수도권 전철 5호선 목동역 건설이 이루어질 때 안정환이 인부로 투입되어 벽돌을 쌓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대표가 되어서도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주고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았기 때문에 금방 돈을 모으지도 못했으며, 이것 때문에 계속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이영표의 보약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에 진학한 안정환은 졸업해서 거액에 프로 축구단에 입단하는 대학교 선배들을 보고 2학년 때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잡았다고 합니다.
1997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 직후 돌아오자마자 후반에 투입되어 혼자 2골 1어시스트하면서 1대2로 지던 팀을 5:2로 역전승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의 재단이었던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부산 대우 로얄즈로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됩니다.
3. 축구인 경력
안정환
(安貞桓, Ahn Jung-Hwan) |
||
포지션
|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
|
번호
|
19번, 8번, 9번, 10번, 26번,
30번, 36번 |
|
소속
|
선수
|
부산 대우 로얄즈/부산 아이콘스 (1998년 ~ 2002년)
AC 페루자 (2000년~ 2002년 / 임대) 시미즈 S펄스 (2002년 ~ 2003년) 요코하마 마리노스 (2004년 ~ 2005년) FC 메스 (2005년 ~ 2006년) MSV 뒤스부르크 (200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년) 부산 아이파크 (2008년) 다롄 스더 (2009년 ~ 2011년) |
해설위원
|
MBC (2014년 ~)
|
|
국가대표
(1997년 ~ 2010년) |
71경기 17골
|
4. 대회 기록
- 부산 아이파크리그컵: 1998
- 리그컵: 1998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J리그 디비전 1: 2004
- 후지 제록스 슈퍼컵: 2004, 2005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3FIFA 월드컵 4위: 2002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3
- FIFA 월드컵 4위: 2002
5. 클럽
시즌
|
소속 구단
|
소속 리그
|
경기
|
득점
|
1998
|
부산 대우 로얄즈
|
K리그
|
33
|
13
|
1999
|
35
|
21
|
||
2000
|
20
|
10
|
||
2000 ~ 2001
|
AC 페루자 칼초
|
세리에 A
|
16
|
4
|
2001 ~ 2002
|
17
|
1
|
||
2002
|
시미즈 에스펄스
|
J리그 디비전 1
|
15
|
7
|
2003
|
39
|
19
|
||
2004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31
|
14
|
|
2005
|
15
|
7
|
||
2005 ~ 2006
|
FC 메스
|
리그 1
|
16
|
2
|
MSV 뒤스부르크
|
분데스리가
|
12
|
2
|
|
2006 ~ 2007
|
2. 분데스리가
|
0
|
0
|
|
2007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K리그
|
26
|
5
|
2008
|
부산 아이파크
|
28
|
6
|
|
2009
|
다롄 스더
|
중국 슈퍼 리그
|
26
|
6
|
2010
|
24
|
10
|
||
2011
|
15
|
2
|
||
통산
|
365
|
131
|
6. 국가대표
연령
|
출전
|
골
|
U-17
|
0
|
0
|
U-20
|
4
|
2
|
U-23
|
0
|
0
|
A대표
|
71
|
17
|
종합
|
75
|
19
|
7. 개인 수상
- K리그 MVP: 1999
- K리그 베스트 XI: 1998, 1999
- K리그 브론즈슈: 1999
- 올해의 키카골상: 1999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2002
- K리그 대상 공로상: 2012
- SBS 연예대상 베스트 챌린지상: 2013
-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특별상: 2014
-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스포츠스타공로상: 2015
- MBC 방송연예대상 인기상: 2019
- MBC 방송연예대상 최우수상: 2021
8. 수훈
- 체육훈장 맹호장: 2002
9. 안정환에 대한 말, 말, 말
10. 멘탈王 & 대인배
- 1999년 부산 대우와 계약 조건에 명시된 (리그 MVP 먹으면 유럽 진출을 위해 전적으로 돕는다는 조항) 약속된 조항이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가면서 라리가 진출을 (라싱 데 산탄데르) 막고, 팬들과 언론에서도 현대산업개발을 크게 비판했지만, 잠을 못 자서 이틀 정도 휴가를 냈을 뿐, 다시 훈련장에 복귀, 꾹 참고 한 시즌을 더 뛰었습니다.
- 페루자가 2001/2002 두 번째 시즌에 주급을 제대로 주지 않아 6개월치 3억 4천이 넘게 밀렸는데도 아무 내색도 안 하다가 월드컵이 끝나고 국제소송 때 가서야 밝혀졌습니다.
- 국제소송크리 맞고 안종복 & 현대산업개발에 처절하게 배신당하고 혼자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안종복의 몹쓸 짓으로 인한 FIFA의 판결로 안정환은 2002년 7월 21일자로 개인 빚만 35억이라는 빚더미에 올랐는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어느 인터뷰에서도 당시 현대산업개발 수뇌부들이나 안종복에 대한 언급을 일절 안 하고 자제하고 있습니다.
- 블랙번 로버스에 못 가고 35억이나 빚진 상태로 일본 연예기획사이던 프로페셔널 매니지먼트 주식회사(현:저팬 스포츠 마켓팅 주식회사)에 팔려가 3년 동안 착실하게 조용히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회사로 출근해서 연예인 스케줄을 이행했음에도 일본에서 97경기 50골이나 넣고, 심지어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우승까지 시켰습니다. 참고로 이 때 블랙번은 안정환을 팀에서 어떻게 활용할지는 물론이며 가족들에 대한 자료까지 모아서, 어느 지역에 집을 마련해줄 것이며 근방의 마트나 학교 등 시설까지 상세히 설명해주는 등 영국에서의 생활 패턴까지 짜서 안정환과 접촉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 나고야 그램퍼스에서의 연봉 29억 제의를 단념하고, 30살이 넘어서 연봉 8억원에 프랑스 하위권 팀인 FC 메스로 유럽에 복귀했습니다. 우디네세 칼초의 코스미 감독의 러브콜에도 우디네세 & 리보르노와 협상 차 이탈리아에 가있을 때, 직접 국경을 넘어 8시간 운전해온 메스 구단주의 정성에 감동먹고 FC 메스로 갔습니다.
- 프랑스 리그앙 시절 당시 에이전트에 2억 원 대 사기를 당하고도, 6개월을 참고 살다가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참고 참다가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국내로 돌아가 조용히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군 경기 당시 FC 서울 팬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정작 본인은 욕도 안 하고, 관중석에 올라갔다는 이유로 천만원 벌금을 냈습니다. 오히려 안정환이 사건 당일 서울팬에 사과문을 게시했습니다. 일명 권오크 사건으로, 안정환은 욕 한마디도 안 했는데 언론에서 삐처리하면서 욕한 거처럼 포장한, K리그 대표 비하사건 중 하나로 아주 악질적인 언론 왜곡입니다. 엄연히 이 사건은 안정환 부인을 모욕한 팬의 잘못입니다. 신해철은 이 사건에 대해서 가족을 생각하는 안정환의 행동을 매우 극찬했습니다.
- 다롄 스더에서 인품의 탁월함을 드러냈습니다. 연봉의 일부를 고아 및 어린이 병원에 기부하고, 매달 한 번씩 찾아가서 봉사도 했는데 그것이 팀 차원에서의 행동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구단 용품을 가지고 가서 아이들한테 공짜로 뿌리기도 했는데 비용은 안정환 자신의 사비로 충당했다고 하며, 동기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라고 합니다.
- 은퇴 이후 K리그 홍보대사 지원금은 0원. 모든 것을 사비와 개인 운전으로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고 상주에 갔을 때는 상주 스탭 및 팬들과 저녁 늦게까지 막걸리 파티를 하고 상주시내 모텔 일반실에서 하루 묵고 갔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사실 본인이 즐기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 홍보대사 이후에도 내셔널리그까지 홍보하기 위해 지방 이곳저곳으로 직접 운전해서 다닌다고 합니다.
11. 외모
선수 시절 안정환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그의 어마어마하게 수려한 외모였습니다.
그래서 리즈시절 대표 별명이 테리우스였습니다.
덕분에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주변 사람들 역시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굉장히 놀랐다는 말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천수는 안정환을 상당히 어려워했다고 회고했는데, 처음 보고 축구 선수를 할 상이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자기는 딱 운동만 하고 산 것처럼 생겼는데, 안정환은 CF까지 들어올 만큼 너무 잘생겨서 부럽기도 하고 열등감까지 느껴졌다고.
이영표 역시 안정환의 외모를 처음 봤을 때 그 잘생긴 외모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히딩크 감독도 안정환을 회상할 때 외모가 화려했고 아름다웠다고 언급했습니다.
박지성도 안정환의 외모가 부럽다고 했으며 반면 안정환은 박지성의 인생이 부럽다고 했습니다.
안정환 본인이 말한 바로는 장발이 스타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구단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일본 TBS에서 방송한 '그때 굉장했던 사람, 일류 운동선수가 놀랐던 그사람 대추적' 편에서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오쿠보 요시토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사람으로 뽑혔었는데 그 이유가 잘생겨서였습니다.
이렇듯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미남임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그의 외모는 독보적입니다.
한국에 뛰어난 실력과 출중한 외모까지 겸비한 미남 운동선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안정환을 능가하는 미남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현재 예능인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그냥 미중년 상의 아저씨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으나 현역 선수 시절에는 연예인들마저 씹어 먹어버리는 미모를 자랑했습니다.
리즈시절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 미녀 배우들인 현빈, 김재원, 한고은 등 수많은 인기 스타들과 CF를 연달아 찍었습니다.
심지어는 연예인들과 비교하여 밀리기는 커녕, 오히려 연예인 쪽이 다소 밀린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셋이 일본 방송에 나온 적이 있는데, 적어도 그 방송에서만큼은 안정환이 둘을 압도하는 외모 클래스를 보여줬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 유명한 사진입니다.
4분 30초부터 그렇게 의류, 화장품, 향수, 스포츠 용품 등 안 찍어본 CF가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김재원과 함께 찍은 남성용 화장품 광고는 이미 전설입니다.
다른 일화로 전성기 시절에 한국 최고 미남으로 손꼽히는 장동건, 원빈과 함께 일본의 예능에 출연한 적도 있었는데 과장 하나 없이 외모로 그들에게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잘생긴 외모는 자녀들한테도 영향을 주었는지 아들 리환 역시 잘생겼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하는 얼굴이었는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각종 해외 투표에서 외모로 최상위권을 차지한 설문조사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칼같은 미남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은 정반대여서 옛날 말투, 아재개그를 자주 시전했다고 하며 굉장히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팀 후배선수가 외모와 실력에 압도되어 눈치만 보다가 아침식사 때 안정환이 숭늉을 마시면서 "숭늉이 들 우러났다 야.
"하는 것을 보고 "저 선배도 보통 사람같은 면모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운동선수가 그렇듯 은퇴 이후에는 얼굴이나 몸에 살이 꽤나 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미중년이라 불릴만 합니다.
쌍꺼풀선도 생겼는데 본인 말로는 살이 쪄서 생긴 거라고 합니다.
살찌면 쌍꺼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다만 나이들어 생기는 쌍꺼풀은 대개 눈 지방층이 얇아져서 생깁니다.
본인의 말로는 "운동선수 때 너무 먹는 걸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은퇴한 지금은 원없이 먹으면서 살고 싶다.
"고 합니다.
그런데, 살이 찌고 수염을 약간 기르게 되면 뭔가 이탈리아, 혹은 중남미 스타일의 얼굴이 된다는 게 웃음 포인트.
그래서 생긴 별명이 그 유명한 슈퍼마리오다.
저 별명은 아빠! 어디가? 시즌2에서 부인 이혜원이 마리오가 그려진 가방을 보고 아들에게 "이거 누구야? 아빠야.
뚱뚱해져서 이렇게 됐어.
옛날에는 테리우스였는데 (지금은) 개뿔" 이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래도 가끔 가다 다이어트를 해서 옛날의 날카로운 얼굴을 되찾을 때가 가끔 있는데, 위대한 배태랑 등의 프로그램이나 시상식 등의 특정 기간에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사실 슈퍼마리오 소리 들을 때도 리즈시절과 너무 달라져서 그렇지 미중년 느낌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리즈시절 대표 별명이 테리우스였습니다.
덕분에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주변 사람들 역시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굉장히 놀랐다는 말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천수는 안정환을 상당히 어려워했다고 회고했는데, 처음 보고 축구 선수를 할 상이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자기는 딱 운동만 하고 산 것처럼 생겼는데, 안정환은 CF까지 들어올 만큼 너무 잘생겨서 부럽기도 하고 열등감까지 느껴졌다고.
이영표 역시 안정환의 외모를 처음 봤을 때 그 잘생긴 외모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히딩크 감독도 안정환을 회상할 때 외모가 화려했고 아름다웠다고 언급했습니다.
박지성도 안정환의 외모가 부럽다고 했으며 반면 안정환은 박지성의 인생이 부럽다고 했습니다.
안정환 본인이 말한 바로는 장발이 스타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구단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일본 TBS에서 방송한 '그때 굉장했던 사람, 일류 운동선수가 놀랐던 그사람 대추적' 편에서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오쿠보 요시토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사람으로 뽑혔었는데 그 이유가 잘생겨서였습니다.
이렇듯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미남임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그의 외모는 독보적입니다.
한국에 뛰어난 실력과 출중한 외모까지 겸비한 미남 운동선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안정환을 능가하는 미남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현재 예능인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그냥 미중년 상의 아저씨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으나 현역 선수 시절에는 연예인들마저 씹어 먹어버리는 미모를 자랑했습니다.
리즈시절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 미녀 배우들인 현빈, 김재원, 한고은 등 수많은 인기 스타들과 CF를 연달아 찍었습니다.
심지어는 연예인들과 비교하여 밀리기는 커녕, 오히려 연예인 쪽이 다소 밀린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셋이 일본 방송에 나온 적이 있는데, 적어도 그 방송에서만큼은 안정환이 둘을 압도하는 외모 클래스를 보여줬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 유명한 사진입니다.
4분 30초부터 그렇게 의류, 화장품, 향수, 스포츠 용품 등 안 찍어본 CF가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김재원과 함께 찍은 남성용 화장품 광고는 이미 전설입니다.
다른 일화로 전성기 시절에 한국 최고 미남으로 손꼽히는 장동건, 원빈과 함께 일본의 예능에 출연한 적도 있었는데 과장 하나 없이 외모로 그들에게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런 잘생긴 외모는 자녀들한테도 영향을 주었는지 아들 리환 역시 잘생겼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하는 얼굴이었는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각종 해외 투표에서 외모로 최상위권을 차지한 설문조사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칼같은 미남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은 정반대여서 옛날 말투, 아재개그를 자주 시전했다고 하며 굉장히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팀 후배선수가 외모와 실력에 압도되어 눈치만 보다가 아침식사 때 안정환이 숭늉을 마시면서 "숭늉이 들 우러났다 야.
"하는 것을 보고 "저 선배도 보통 사람같은 면모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운동선수가 그렇듯 은퇴 이후에는 얼굴이나 몸에 살이 꽤나 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미중년이라 불릴만 합니다.
쌍꺼풀선도 생겼는데 본인 말로는 살이 쪄서 생긴 거라고 합니다.
살찌면 쌍꺼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다만 나이들어 생기는 쌍꺼풀은 대개 눈 지방층이 얇아져서 생깁니다.
본인의 말로는 "운동선수 때 너무 먹는 걸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은퇴한 지금은 원없이 먹으면서 살고 싶다.
"고 합니다.
그런데, 살이 찌고 수염을 약간 기르게 되면 뭔가 이탈리아, 혹은 중남미 스타일의 얼굴이 된다는 게 웃음 포인트.
그래서 생긴 별명이 그 유명한 슈퍼마리오다.
저 별명은 아빠! 어디가? 시즌2에서 부인 이혜원이 마리오가 그려진 가방을 보고 아들에게 "이거 누구야? 아빠야.
뚱뚱해져서 이렇게 됐어.
옛날에는 테리우스였는데 (지금은) 개뿔" 이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래도 가끔 가다 다이어트를 해서 옛날의 날카로운 얼굴을 되찾을 때가 가끔 있는데, 위대한 배태랑 등의 프로그램이나 시상식 등의 특정 기간에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사실 슈퍼마리오 소리 들을 때도 리즈시절과 너무 달라져서 그렇지 미중년 느낌이 났었습니다.
12.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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