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여순 사건 이후 남로당 계열의 군인을 숙청하는 숙군 과정에서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이후 1949년 2월 '군병력 제공죄'로 사형을 구형받은 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때 백선엽은 육군본부에서 정보국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김안일 방첩대 과장을 통해 직접 면담하고 만주 시절 동료 20명으로부터 ‘박정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보증서를 제출받고서 미군과 이응준 총참모장의 동의를 받아 형 집행정지 처분을 이끌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선엽은 불명예 제대한 박정희를 정보국 전투정보과에서 문관(현 대한민국 군무원) 신분의 북한반 상황실장으로 일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습니다. 당시 정보국에서는 예산 문제로 문관 월급을 보장해 줄 수 없다고 했지만, 백선엽은 자신의 판공비 일부를 떼어서 박정희의 월급으로 지불했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부지한 박정희는 이후 6. 25 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정보국장이던 장도영의 건의로 1950년 7월 31일 자로 육군 포병 소령으로 복직하게 되었습니다.
제5사단장으로 부임한 박정희의 보직신고를 받는 백선엽6. 25 전쟁 종전 후인 1953년 11월에 박정희를 장군으로 진급시켜준 것도 백선엽이었습니다. 당시 백선엽은 육군참모총장이었는데, 경무대에서는 박정희의 남로당 전력을 문제삼아 제외하려 했으나 인사를 강행했습니다. 백선엽을 교통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박정희 대통령 그러나 5. 16 군사정변 직후 중화민국 주재 대사로 타이페이에 있던 백선엽은 미국 대사와의 면담에서 박정희의 전력을 이유로 사상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그 이후 백선엽은 중화민국 주재 대사에서 유럽/아프리카 총괄대사로 전임되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유럽과 아프리카, 캐나다를 떠돌았습니다. 모친 병환을 이유로 잠시 귀국했을 때 박정희를 면담하고 나서도 2년 뒤인 1969년 12월에야 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교통부 장관 퇴임 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한국종합화학 등 공기업체 사장을 두루 거치며 보상받았습니다.
여담으로 백선엽은 박정희보다 3살 어리지만 항렬로는 외할아버지뻘입니다. 박정희의 모친 백남의는 수원 백씨 28세손으로 남(南)자 항렬이었고, 백선엽은 수원 백씨 27세손입니다. 숙군 당시 사형 위기에서 구명해준 점, 이러한 모친쪽 가문과의 인연이 두루 작용해서, 박정희는 대통령이 된 뒤에까지 3살 아래였던 백선엽을 '형' 또는 '백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3. 이야기들
전설적인 사채업자 명동 큰손 '백 할머니' 백희엽(1916~1995년)이 사촌 누납니다. 백희엽은 '광화문 곰'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고성일과 더불어 '백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대한민국 사채업의 양대 거물이었고,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1970~90년대 슈퍼개미(개인 주식투자가)였습니다. 영화 '마스터' 에서 주인공 김재명 팀장(강동원 분)이 사기꾼 진현필 회장(이병헌 분)을 유인하기 위한 작전 자금을 빌린 할머니(박정자 분)가 바로 백할머니 백희엽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입니다. 뉴욕에서 어느 기자가 동양 사람들은 대개 키가 작고 안경을 쓰면서 금니를 했는데, 당신은 왜 그런 모습이 아니냐라고 묻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이에 백선엽이 그런 질문엔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자 기자가 머쓱하게 물러났다고 합니다. 알레이 버크 제독과 담소를 나누는 백선엽 장군 6. 25 전쟁 때 알레이 버크 제독의 해군 77기동 함대가 국군 1군단에게 함포사격을 지원해준것을 계기로 알레이 버크 제독과 절친이 되었습니다.
해군 함대가 육군의 포병대 노릇을 해 준 셈인데, 그 덕분에 백 장군은 전쟁 막바지에 미 육군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에게 "본관의 포병 지휘관입니다. "라고 소개할 정도였습니다. 버크 제독이 사망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해상자위대 대표들에게 버크 제독이 자위대 창설에 크게 기여했음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퇴역한 지 오래지만 대한민국 육군에서는 별세 전까지 각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육군본부 방문 시에 군악대와 의장대가 동원된 공식적인 의전도 받았습니다. 현역 육군참모총장이 퇴역한 백선엽에게 경례를 하는 모습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2013년 9월 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이 국방부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백선엽은 지난 2003년 11월부터 2012년까지 근 10년간 업무용 에쿠스 차량 1대와 운전병, 그리고 4급 상당의 개인 보좌관 등을 국방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그가 세운 공으로 상당한 예우를 받았던 편입니다.
노년까지도 상당한 대식가였다고 합니다. 2009년 2월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육군협회 관련 행사에 참석한 이의 증언으로는, 계속 꾸벅대다가 만찬이 시작되자마자 접시를 순식간에 비워낸 어르신이 백선엽인 걸 나중에 알고 황당했다고 합니다. 사실 군인 출신인 걸 감안하면 크게 이상할 건 없습니다. 영어, 일본어, 표준중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였습니다. 육군사관학교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육사를 방문해 생도들에게 자신의 저서를 나눠주거나 장학금을 기탁하기도 했습니다. 6. 25 전쟁 당시 백선엽이 사단장으로 근무했던 육군 제1보병사단에는 그의 동상이 있습니다. JSA 경비대대 주둔지 내 소재하고 있는 막사 신관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딴 백선엽관입니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와 같은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바로 옆마을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인연 덕분인지 2019년, 노 전 총리의 사망 직전까지 자주 연락했습니다. 2013년 9월,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그의 이름을 따 '백선엽 한미 동맹상'이 제정되었습니다. 친일 행보에 대해 논란이 있는 백선엽이지만, 6.
25 전쟁 중의 학살과 부패에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국방일보 노병이 걸어온 길 칼럼에서는 인민공화국 치하 마을을 약탈한 병사를 즉결처형한다고 일부러 빗맞춰서 돌려보낸 일화라든가, 빨치산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긍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백선엽도 가장 안타깝다는 어조로 서술한 일화가 있는데, 본인은 다만 전후에 들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수도사단 소속이던 당시 24세의 김 대위가 있었는데, 그는 지리산에서 작전중 오양수라는 이름의 악질 20살 여성 빨치산 포로에 한눈에 반하고 만다. 결국 그는 주변의 시비를 물리치고 오양수에게 군인가족증명을 만들어줘서 본가로 돌려보냅니다. 그러나 이후 둘 다 방첩대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만다. 오양수는 심문에 답하지 않고 다만 김 대위의 안부를 묻다가 감시병의 총으로 자살했고, 김 대위는 남원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다가 백야전사의 작전이 종료된 뒤 후임사단장의 특사로 원대복귀했습니다. 그 후 그는 오양수의 유해를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1973년 중령으로 예편하였다고 합니다. 2017년에는 주한 미 육군의 평택 이전 행사에 초청받았는데, 모두 휠체어를 탄 모습이었습니다.
하기야 그도 어느덧 100세를 바라보는 백전노장이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백선엽과 비슷한 시기에 군생활을 했던 이들은 물론이고 한국전쟁시기 백선엽보다 10년 가랑 어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참전용사들도 대부분 늙어서 사망한 상태입니다. 2018년 11월 21일에 98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이날 잔치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로버트 에이브람스 주한미군 사령관 등 한미 양국의 군사 및 외교 주요 당국자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같은 해 비상국민회의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육사 학술정보원(원장 오경두 대령)은 육군사관학교 교내 포털사이트에 자서전 '군과 나'를 기초로 한 웹툰을 올렸습니다. 슬하에 2남 2녀를 뒀으며, 2020년 사망 기준 한국 나이로 101세였습니다. 백선엽과 가까운 백씨 집안 인사들은 상당히 장수했습니다. 백선엽 본인이 만 99세에 사망했으며, 본인보다 늦게 태어나서 일찍 죽은 동생 백인엽도 91살에 사망했습니다. 또한 비교적 일찍 죽은 편에 속하는 사촌누나 백희엽조차 79살에 사망했습니다.
2012년 원수 진급심사를 받았으나 간도특설대 문제로 인해 원수 진급이 좌절되었습니다. 사후 백선엽 추모행사는 민간 차원에서 열었으나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재평가의 움직임이 일자, 7월 2주기부터 국군 측이 의장병과 군악대를 보내고 조화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2023년 3주기 때부터 경상북도청, 칠곡군청, 국가보훈부, 육군본부 4곳이 공동으로 주최하기 시작했습니다. 7월 6일 '다부동 전투 참전 주민위령비'를 먼저 제막하고 백 장군의 동상까지 세웠다. 2023년 4월 20일,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군사령관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해 공동으로 지정한 '6. 25 10대 영웅' 중 하나에 올랐고, 5월 3일까지 미국 뉴욕시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비추어진 바 있습니다. 6월 30일 그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이 공식 출범되었는데, 명예이사장으로 장녀 백남희, 초대 이사장으로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이 각각 앉았습니다. 7월 6일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은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백선엽, 김백일, 이응준, 이종찬, 신태영 등 12명에게 붙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국립현충원 안장정보에서 떼내겠다는 방안을 밝혔으며,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은 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4. 대중매체에서
1984년 KBS1 특집드라마 <휴전 6.25>에서는 배우 박근형이 연기했습니다.
1989년 MBC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는 배우 김수찬이 연기했습니다.
1993년 MBC 드라마 <제3공화국>에서는 성우 황일청이 연기했습니다.
1998년 SBS 정치 대하드라마 <삼김시대>에서는 성우 황윤걸이 연기했습니다.
대체역사물 Thousand-Week Reich에 성공적으로 건국된 조선인민공화국 장군으로 등장. 군 내부 파벌 싸움에서 만주군계 소속입니다.
대체역사물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 대만주제국 장관으로 등장했습니다.